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421.010050729190001

영남일보TV

[세월호 이후 1년, 대한민국에 묻다] <하>산 사람은 살아야지…쉽게 잊는 망각사회

2015-04-21

적당히 책임 묻고 적당히 잊는 순간 ‘또다른 세월호’가 침몰한다

[세월호 이후 1년, 대한민국에 묻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쉽게 잊는 망각사회
지난 18일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세월호 이후 1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펼침막에 쓰여진 글귀처럼 세월호 유가족들과 아픔을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우리는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연합뉴스
[세월호 이후 1년, 대한민국에 묻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쉽게 잊는 망각사회
지난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길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 추모 타일에 적힌 메시지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 잊는다고 고통 극복못해
'보상했으니 이젠 잊자’보다는
절절히 슬픔 공감하고 애도를

기억하며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집단적 교훈으로 승화시켜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 유가족들의 슬픔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 슬픔에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한다. 참사를 이겨낸 선진국들의 사례를 들며 말없이 고통을 이겨내는 성숙한 태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제 좀 그만하라고, 산 사람은 살아야겠다고 그들을 밀어낸다. 길거리 환기구가 무너져 사람이 또 죽고, 캠핑장에 불이 나 일가족이 또 죽어도 담담하다. 적당히 묻고, 적당히 잊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또다른 세월호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잊지 않겠습니다…1년 만에 ‘이제 그만 잊자’

일 년 전 너나할 것 없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잊지 않겠습니다’를 외쳤던 우리에게는 슬픔과 분노, 결심과 맹세가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김석수 경북대 교수는 “한 사회에서 어떤 일이 나쁜 일임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 일이 안겨준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증에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 사고가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그 사고를 잊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기억하지 않는 것만으로 그 사고가 안겨준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 사고를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현재와 미래를 설계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 안에 기억을 창조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역량이 빈곤한 것은 아닌가?

빼앗김, 빈곤, 억압이라는 단어로 가득 찬 20세기 우리의 과거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을 하는 것은 옛 것을 절대화하기 위한 것도, 미래에 복수를 하기 위한 것도 아니어야 한다. 기억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다.

윤석기 2·18 희생자대책위원장은 “죄송합니다. 우리가 유족 노릇을 제대로 했다면 여러분들이 유족이 되는 일이 없었을 텐데 우리가 상주 노릇, 유족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런 아픔을 겪게 했습니다”라고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죄’한 바 있다. 윤 위원장은 “참사 당시 수많던 애도와 위로가 어느 순간 ‘그만하면 됐다. 산사람은 살아야지’를 넘어 ‘해도 너무한다. 무슨 다른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달라짐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잊지 않겠다’라는 말은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법과 제도의 정비와 문화와 인식의 변화를 가져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는 윤 위원장은 “그것이 12년째 대구시와 민형사소송을 하고 있는 우리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우리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눠질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지만 우리는 세월호로부터 역사적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세월호 1년이 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던져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이런 사고가 되풀이되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김 교수의 대답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비롯한 수많은 사고의 경험으로부터 조직적, 집단적 교훈을 축적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 능력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는 김 교수에 따르면 세월호로부터 어떤 기억을 집단적으로 축적해내지 못한다면 이런 사고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현실적 보상만 강조…성장과 변화의 기회 삼아야

김연희 대구대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현실적 보상이라는 것이 너무 강조되는 물질 만능의 사회적 분위기가 쉽게 잊게 하는 데 기여한다”고 본다. ‘고통에 대한 보상을 했으니까 사회적 책임이 어느 정도 끝났다’는 편리한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는 것. 그런 점에서 희생자 배·보상 문제가 참사 1주기에 맞춰 가시화됐다는 점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 희생된 인명과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물질적 가치로 저울질하여 보상한다는 것은 결국 비인간화와 공동체 성원들의 냉소에 기여한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큰 사회적 재난에 대처하는 과정에 희생자 집단의 고통만을 부각하는 것만으로는 사회 전체의 ‘생존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정서가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과 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시련 후의 실존적, 영적 성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거의 부재한 편이다. 비극적 사건 후에 아픔에 고착해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잊어버리는 대처기제를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고통이 성장과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되고 구체적인 변화의 결과(입법, 행정적, 기술적 변화 등)를 사회구성원들이 알게 되면 공동체적 단결, 유대의식을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노진철 경북대 교수는 “산 사람은 살아야지 하는 서민들의 운명론은 항상 지배 권력의 강압적 통치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이용되어왔다”고 분석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부당한 폭력의 행사에 맞서 저항하기보다 탄압을 받고 무시당하던 슬픈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힘없는 식민지 신민의 의식적 망각이 광복 후 권위주의 정권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다는 것.

노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무능으로 죽지 않아도 될 어린 학생들이 수장을 당했던 비극적 사건으로 결코 잊으려 한다고 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세월호 참사가 가지는 의미는 우리 국민들이 국가의 존재 의미와 역할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해 성찰하는 논의의 장을 처음으로 열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슬픔을 공감하고,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며, 상처들을 보듬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되새김하고 마음을 다듬어 다시는 그러한 고통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도 한다. 그러므로 망각에 저항해야 한다. 세월호를 잊는다는 것은 세월호를 다시 반복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아직 잊을 권리가 없다. <끝>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신인철기자 runchu@yeongnam.com

‘세월호 이후…’ 외부전문가 그룹

 

▲김경민 대구YMCA 사무총장 ▲김석수 경북대 철학과 교수 ▲김연희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희철 계명대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 ▲윤석기 2·18희생자대책위원장 ▲정운선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나다 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