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국학진흥원 소장)
조선 유교 지식인 1만명의 청원서
사도세자 추존·복제개혁 반대 원본
![]() |
1884년 중앙정부에서 진행된 복제 개혁에 반대하는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 원본. 작은 사진은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달라는 만인소의 두루마리 원본.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소중한 유산인 ‘만인의 청원, 만인소(萬人疏)’ 2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 목록(유네스코 아태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이하 국학진흥원)은 30일 광주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 기록유산 총회에서 인류가 기억해야 할 중요 기록물로 ‘만인의 청원, 만인소’를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만인소는 조선시대 1만 여명에 이르는 재야 유교 지식인들이 연명해 임금에게 올린 청원서다. 1792년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사도세자를 신원해 달라는 청원에서 시작돼 다양한 사안을 놓고 19세기 말까지 모두 7차례 청원이 이뤄졌다. 만인소 원본이 남아 있는 것은 1855년 사도세자를 왕으로 추존해 달라는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와 1884년 당시 중앙정부에서 진행된 복제 개혁에 반대하는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 등 2점이다.
이들 만인소 원본은 각각 도산서원(안동)·옥산서원(경주)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지금은 국학진흥원에서 보존하고 있다. 1만94명이 연명한 사도세자 추존 만인소는 너비 1.11m·길이 96.5m·무게 16.6㎏이다. 8천849명이 연명한 복제개혁 반대 만인소는 너비 1.02m·길이 100.36m·무게 8.3㎏이다.
만인소는 대부분 중앙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운동에 참여한 재야 지식인들은 정부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 만인소 운동을 이끌었던 리더는 유배를 가기도 했다. 청원 참여 규모와 성격에 비춰 지금의 청와대 청원 운동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만인소는 목숨을 걸고 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고 있다.
이용두 원장은 “이번 등재를 계기로 민간 소장 기록유산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면서 “앞으로 그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고 전승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동=이두영기자 victory@yeongnam.com

이두영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