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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신명연 ‘연꽃’

2019-05-17

암울한 시대에 맞선 희망 품은 두송이 연꽃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신명연 ‘연꽃’
신명연, ‘연꽃’, 비단에 채색, 34x21㎝, 1864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에 민감한 이들이 예술가다. 변화에 맞춰 미의식도 색다른 것을 원한다. 조선시대 말기, 시대의 변화 속에 화가들도 현세의 흐름을 작품에 이식하기에 바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새로운 바람은 작품 감상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산뜻하면서 세련된 먹 기법의 화조화가 감상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화조화에 불씨를 지핀 화가는 단연 애춘(靄春) 신명연(申命衍, 1808~1886)이었다. 그의 작품 ‘연꽃’은 환한 등불로 감상자의 눈을 밝혀준다. 화가의 감성으로 꽃핀 작품은 혼란한 시대에 맞선 변화였다.

신명연은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7)의 아들이다. 17세에 무과에 합격하여 70대 초반까지 정3품 당상관(堂上官)으로 부사(府使)로 재직했다. 관직에 있으면서 사군자, 화조, 화훼, 산수, 인물 등 다양한 회화장르를 소화했다. 그리고 이색적인 화풍으로 조선시대 말기에서 근대 초입까지의 시대 흐름을 담았다.

신명연의 아버지 신위는 시, 서, 화 삼절(三絶)을 갖춘 문신이자 명성 높은 서화가였다. 1812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가서 청의 문물을 보고 견문을 넓힌다. 청에서 만난 대학자 옹방강(翁方綱)과의 교유로 국제적인 예술관을 형성한다. 신위는 묵죽화에 뛰어났으며 많은 양의 중국 회화를 소장하고 감상한 품평가였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신명연은 청대의 새로운 학문과 서화를 적극 수용하여 자신의 화화세계에 반영하였다. 조선 말기는 신분이 와해되는 시기로, 그는 서자(庶子)임에도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작품세계를 펼칠 수 있었다.

신명연은 10대 초반부터 형 신명준(申命準, 1803~1842)과 아버지 신위에게 시서화를 배우며 재능을 보였다. 그가 11세에 지은 시구(詩句) “한편으로는 눈이 오고 한편은 사라지는 구나(一邊雪來一邊消)/ 봄눈과 봄비가 같이 우거지네(春雪春雨同靄靄)”의 구절에서 따온 ‘애춘(靄春)’을 호(號)로 사용한다. 13세에 ‘애춘동자’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 시와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다. 평생 관직생활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그는 화조화를 가장 많이 그렸다. 섬세하고 세련된 색감의 화조화를 19세기 회화로 개척한 시대적 감성을 지닌 화가였다.

신명연은 꽃과 나비를 잘 그린 남계우(南啓宇, 1811~1890)와 김수철(金秀哲), 전기(田琦, 1825~1854) 등과 조선시대 말기 화단을 다채롭고 감각적인 화풍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그는 산수화와 사군자에 조형요소로 필묵을 활용하여 사의적인 아취가 깃든 이상경의 문인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청대의 새로운 화풍을 수용하여 19세기 화단의 참신한 미감으로 변화시키는데 앞장섰다.

신명연은 특히 청대의 화조화가인 운수평(壽平, 1633~1690)의 영향을 받았다. 운수평은 시서화에 능하였다. 작품의 색채가 아름답고 우아하며 필촉(筆觸)이 경쾌해 독특한 품격을 형성한 화가였다. 그의 산수나 화훼의 창작은 자연미를 바탕으로 한 가슴 속의 ‘일기(逸氣)’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의 ‘연꽃’은 세련된 기교에 일기를 발휘한 작품이다. 신명연은 운수평의 작품에서처럼 세련된 색채에 장식성을 가미하여 자신만의 화조화를 탄생시켰다.

조선 말기에는 꽃과 새들이 어우러진 화조화와 매화, 국화, 연화 등 군자(君子)의 아취를 나타내는 꽃 외에 백합, 작약, 금낭화, 옥잠화, 원추리, 수국 등 다양한 화종(花種)을 소재로 다룬 화훼화(花蝶畵)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다. 화훼화는 색채가 밝고 산뜻하여 장식적인 역할도 했다. 1864년에 신명연이 제작한 ‘산수화훼화첩’에는 19점의 꽃 그림과 21점의 산수화가 들어있다. 작품들은 간결하면서 담백하여 일기를 풍기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 중 ‘연꽃’은 보는 순간 푹 빠져들게 하는 마력 같은 작품이다.

‘연’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군자를 상징한다. 그의 ‘연꽃’에는 두 송이의 연꽃이 탐스럽게 피어 반짝인다. 어린아이의 볼처럼 분홍빛 꽃잎이 봉긋하여 터질 것만 같다. 앞쪽의 봉오리를 맺은 꽃은 입을 다물고 피기 직전이다. 이미 활짝 핀 연꽃은 연밥을 드러낸 채 아우라를 자랑한다. 연꽃잎은 정갈하고도 복스럽다.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신명연 ‘연꽃’
김남희 화가

아래쪽에는 네 개의 줄기가 공간에 변화를 준다. 마치 발레를 하듯 다리 같은 줄기를 꼿꼿이 세웠는가 하면, 줄기를 교차하면서 공연에 열중이다. 붉고 하얀 연꽃이 돋보이게, 두 장의 녹색 잎사귀는 배경 역할에 충실하다. 연잎 색과 바탕색이 은은하여 활짝 핀 꽃에 시선이 집중된다. 주연과 조연이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빛이 되고 있다.

희망을 품은 산뜻한 그림은 어쩌면 암울한 시대에 맞섰던 신명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변화의 바람이 휘몰아친 시대를 염두에 두면, 무심한 듯 그린 ‘연꽃’이 마냥 아름답지만 않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 화초들이 어울려 자란다. 나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매일 철이 든다. 고요하게 물결치는 소리, 꽃이 열리는 소리, 물방울 지는 소리, 발길을 멈추는 소리, 숨죽이는 소리,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소리 등이 신명연의 ‘연꽃’처럼 나를 깨운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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