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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이인문 ‘목양취소(牧羊吹簫)’

2019-06-14

녹색의 무릉도원, 소마저 귀 기울이는 단소 소리…규장각 생활 속에서 꿈꾼 탈속

20190614
이인문, ‘목양취소’, 종이에 채색, 30.8x41.5㎝, 간송미술관 소장
20190614

그늘이 더위를 삼킨다. 소나무 숲을 거닐며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도인’이 있다. 아련히 물안개가 피어난다. 선선한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리고, 아련히 단소소리가 난다. 소리를 따라가보니, 한 소년이 바위에 앉아서 단소를 불고 있다. 무념무상의 경지였다. 도인은 얼른 붓을 들었다. 제목은 ‘목양취소(牧羊吹簫)’. 이 도인이 바로 긴 호를 가진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 1745~1824)이다.

이인문은 역관을 지낸 중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두각을 보여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그 후 왕이 관리하는 ‘차비대령화원’으로 발탁되어 38년간 궁중화원으로 근무한다. 영조와 정조의 어진제작에 동참하는 등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와는 평생지기로 서로 작품에 시제를 주고받을 만큼 조선시대 후기 화단을 탄탄하게 다졌다. 이인문은 김홍도와 여항문인들의 모임인 ‘송석원시회’에 참여하여 서양화법을 사용한 시화(詩畵)를 그리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는 경화세족과 여항문인들이 중국에서 수입한 각종 서적과 고동서화(古董書畵)를 수장하는 애호가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희귀한 그림과 서적으로 장식한 서재에 지인들을 초대하여, 그림과 서적을 감상하며 예술을 즐겼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탈속의 세계를 문인들은 산수화 속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주로 이상향을 담은 이인문의 산수화는 그런 취향의 문인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20년 지기인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은 이인문의 작품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대수장가이기도 했던 그는 ‘금릉집(金陵集)’에서 이인문을 ‘신필의 화가’로 지칭하며, 강직하고 곧은 성격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역시나 수장가이자 서화애호가인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은 자신의 수장품 목록과 비평을 갈무리해둔 ‘석농화원’에 이인문이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제자라고 적었다. 그래서 심사정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이인문은 남종문인화풍의 산수화를 그리며, 화조와 이국적인 동물을 주제로 한 영모, 고사인물화, 도석인물화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인문은 동지겸사은(冬至兼謝恩)의 수행화원으로 두 차례 북경을 다녀오기도 했다. 북경에서 접한 선진문화는 그의 예술세계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사행길에 그린 화첩인 ‘한중청상첩(閒中淸賞帖)’에는 낙타, 양, 말 등의 동물과 서역인의 모습이 인상적인 서양화풍의 작품이 들어 있다. 20점의 그림이 장첩된 이 화첩에는 대부분의 화제를 간재(艮齋) 홍의영(洪儀泳, 1750~1815)이 써서 더 관심을 모았다. 홍의영은 시와 글씨에 능하고 행초(行草)를 잘 쓴, 탁월한 감식안이었다.

‘목양취소’는 도석인물화다. 2명의 인물에, 8마리의 양과 1마리의 소가 등장한다. 목가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그림의 주제는 진대(晉代) 사람인 황초평의 고사(故事)다. 황초평은 15세 때에 양을 치러 산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신선을 만나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로 들어간다. 40여년간 수련 끝에 그는 신선이 된다. 한편 형 황초기가 동생을 찾으러 금화산에 왔다가 동생이 15세 때의 모습 그대로 양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마침내 형도 동생을 따라 신선도를 닦는다.

‘목양취소’는 이 고사의 주인공인 황초평의 탈속한 세상을 수를 놓듯 촘촘히 표현해놓았다. 파릇파릇한 버들가지가 머릿결처럼 팔랑거리고, 아름드리 수양버들이 우거져 있다. 건강한 녹색 천지다. 먼 곳에서는 수양버들이 하늘과 강을 가로지른다. 들판에서는 양떼가 평화롭다. 크고 넓은 바위에서 한 소년이 단소를 불고 있다. 호수와 하늘은 여백으로 처리하여 단소의 음색을 높인다. 멀리 강가에서 소년이 낚싯대를 드리운다. 엎드린 소마저 귀 기울이는 단소 소리에 한낮의 고요가 깊어간다. 무릉도원이다.

수묵담채로 화면 가득 연두색을 은은하게 풀어놓았다. 산수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덕분에 이인문의 산수화풍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새싹이 기름지고 만물이 조화롭다. 풀을 뜯는 양은 먹으로 음영을 주어 수채화처럼 맑고 투명하다. 탈속의 세상에 시나브로 마음을 빼앗긴다. 화면 왼쪽에는 홍의영이 쓴 ‘네가 바로 황초평의 후신이 아닌가(爾其非黃初平後身)’라는 화제가 찌처럼 빛난다.

이인문은 규장각 생활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꿈꾼 탈속의 세계를 산수화로 그렸다. 사실주의적인 면과 개성적인 문인화풍을 구사한 이인문의 회화는 당대의 문인과 예술애호가들에게 높은 평가와 주목을 받았다.

그늘이 깊은 산으로 간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소나무 숲을 거닌다. ‘목양취소’처럼 나도 단소를 불고 싶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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