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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이영석 '작품 2012-24'

2020-05-22

우리곁에 학처럼 머물다 향기로 남은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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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작품 2012-24' 46×75㎝, 2012년.

풍란의 꽃향기가 아침을 깨운다. 봄부터 꽃대가 얼굴을 내밀더니 오월이 되어 웃음을 머금었다. 꽃은 정성을 먹고 자란다. 그동안 부지런히 발소리를 들려주고 눈빛을 맞췄다. 사람도 그렇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인격체가 된다. 몸은 부모에게 받지만 정신은 스승에게 받는다. 제자는 스승의 발소리를 듣고 따라간다. 나에게 발소리를 들려준 스승은 대학 은사인 이영석 선생(1952~2020)이다.

이영석 선생은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1983년 3월에 계명대 미술대학에 부임해 2017년 8월에 퇴임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대구에서 35년여간 스승의 길을 걸었다. 서울 억양으로 대구 말씨를 쓸 만큼 대구는 선생에게 '영혼의 고향'이었다.

선생은 태생이 선비였다. 곧은 성격에 원칙을 준수하는 선생은 학교라는 조직 생활은 불편해했지만 스승으로서는 훌륭했다. 선생이 수업시간에 보여준 학생들의 작품평은 매서웠다. 스승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졸업생들이 크고 작은 그룹전을 갖거나 개인전을 하면 꼭 참석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선생의 작업은 자유로운 느낌의 수묵 위주였다. 젊은 시절에는 사의적인 인물을 다루었고, 수묵 바탕에 자유분방한 필세를 살려 생동하는 화폭을 연출했다. 중년에는 기하학적 형상을 일구며 색다른 조형언어를 선보였다. 한동안 수묵 바탕에 청색이나 붉은색의 테이프를 세모와 네모·원형으로 오려서 화면 가득 채우는, 기하학적인 형상의 작업을 했다. 다시 60대에는 수묵 바탕에 굵은 붓으로 가로 세로의 획을 긋는 한편 빈 여백에는 굵은 선으로 몇 가닥의 획을 더해서 수묵과 여백의 조화를 펼쳐 보였다. 선생의 작업은 젊어서부터 실험성이 강한 수묵으로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지향했다.

'작품 2012-24'는 수묵 바탕에 청색의 테이프로 화면을 가득 메운 작업이다. 제목은 2012년도에 제작한 스물네 번째 작품이란 뜻이다. 선생은 청년기부터 인물을 자유자재로 풀어서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이 작품도 청색의 테이프를 여러 가지 형상으로 오려서 레고 장난감 조립하듯이 작업했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사람의 흉상처럼 보인다.

작품 화면에는 먼저 먹으로 형상을 칠한 다음 청색의 테이프 조각들을 붙여 생기를 불어넣었다. 천개의 눈을 가진 자화상 같다. 각각의 눈·코·입의 형상들이 어울려 군상의 몸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작품 속에 진귀한 동화 속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선생의 작품에는 항상 인간 형상이나 체취가 배어 있었던 것 같다.

선생은 말년에 자신의 작품을 모두 정리했다. 퇴임 후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부분의 작품을 손수 없애버렸다. 퇴임 전시회도 갖지 않았다. 유달리 결벽했던 만큼 선생은 본인의 작품을 다른 사람이 없애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작업실을 정리할 때 몇 번 도와드린 적이 있다. 그 덕분에 운 좋게도 선생의 작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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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어느 날, 모교의 선후배 몇 명이 조촐하게 '선생의 퇴임'을 축하하며 점심을 함께했다. 이후 선생은 대구를 떠났다. 다시 선생의 소식을 접한 것은 얼마 전 '부고'였다. 이른 아침 산행을 할 때였다. 지인이 카톡으로 '4월18일 이영석 선생이 별세하셨다'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순간 가던 길을 멈추고 하산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산 아래 작은 저수지를 지날 때였다. 학 한 마리가 고고하게 앉아서 먼 산을 보고 있었다. 나는 미동도 없이 서 있는 학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보낸 후 학은 저수지를 몇 바퀴 돌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해맑은 선생의 모습 같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오월 '스승의 달'에 선생의 발자취를 되새겨본다. 너무 빨리 저 세상으로 육신을 거두어 가셨지만 올곧은 정신과 가르침만은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다. 제자들이 선생을 그리워하는 한 선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선생의 자취가 풍란의 꽃향기 같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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