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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문 '총석정'. 종이에 엷은 색, 28.2×34.0㎝. 〈간송미술관 소장〉 |
11월의 바다는 서늘한 청록색이다. 바람 따라 일렁이는 파도에 마음이 들썩인다. 작열하는 태양의 여름바다는 가고 휴식을 취하는 가을바다가 한가롭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심호흡을 한다. 바다는 심신을 밝혀주는 청량제다. 2년여 만에 바다를 본다.
코로나로 갇혀 지내는 동안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李寅文·1745~1824)의 '총석정'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흰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바다를 동경했다. 그림 속에 있는 정자에 앉아 바다를 보며 망중한을 보내기도 했다. '총석정'은 조선시대 동해 바다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동해는 빼어난 절경으로 유명하다. 화가는 눈앞에 펼쳐진 절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시인은 시로 읊었다. 명승지를 유람하고 문학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중국의 '소상팔경도'가 고려로 건너와 유행한 덕분이다. 소상팔경은 중국 소상 일대의 광활하고 습윤한 경관을 일컫는다. 이곳의 풍경을 그린 것이 '소상팔경도'다. 이후 '소상팔경도'는 명승지를 소재로 한 산수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려 말의 문인 안축(安軸·1282~1348)이 총석정, 삼일포, 경포대, 죽서루, 월송정 등 관동의 명승을 시로 읊은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남긴 바 있다.
조선시대에는 동해의 관동팔경과 금강산을 유람하며 그림을 그리고 화첩을 엮는 것이 화가의 로망이었다. 문학으로는 관동팔경을 담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의 기행가사 '관동별곡'이 있다. 그림으로는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금강산화첩'과 63세 때인 1738년에 관동지역의 명승 11곳을 그린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을 남겼다. 또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 ?)는 정조의 명을 받아 여러 지역을 유람하고 기행화첩을 만들어 바쳤으며 관동지역을 그린 '관동명승첩'도 전한다.
관동팔경은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천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 여덟 곳으로 동해안을 따라 연결된 관동지방의 명소들이다. 이중 총석정은 화가들이 그림 소재로 많이 다룬 명승지였다. 그중 이인문의 '총석정'은 빼어난 절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생기 넘치는 작품이다.
이인문은 역관을 지낸 중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두각을 보여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그 후 왕이 관리하는 '차비대령화원'으로 발탁돼 38년간 궁중화원으로 지냈다. 영조와 정조의 어진 제작에 동참하는 등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김홍도와는 평생지기로 서로의 작품에 시제를 주고받을 만큼 조선 후기 화단을 탄탄하게 다졌다. 이인문은 김홍도와 여항문인들의 모임인 '송석원시회'에 참여해 서양화법을 사용한 시화(詩畵)를 그리기도 했다.
'총석정'은 육모의 기이한 돌기둥이 세 개 솟아 있고, 보석 같은 바위들이 해안에 깔려 있는 신비로운 광경이다. 동해의 바다와 어우러져 관동팔경 중에서도 수려한 경관으로 꼽힌다. 오른쪽으로 난 언덕을 따라 오르면 맨 끝 절벽 위에 총석정이 있다. 바다를 감상하기에 제일 좋은 곳이다. 솟아오른 바위에 끊임없이 일렁이는 파도가 생기를 불어넣는다. 왼쪽의 원경에는 섬을 배치해 화면에 변화를 주었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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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앞 공간에는 해안을 따라 가로로 놓인 바위가 타일처럼 깔려있고 바다 앞에는 집 한 채가 보인다. 육각형의 바위가 첩첩이 쌓인 돌기둥이 직각으로 서 있다. 앞에 있는 돌기둥은 연한 먹으로 처리하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짙고 강한 먹선으로 바위를 그려서 원근감을 주었다.
모래사장은 둥근 해안선을 따라 붓을 눌러 점을 찍듯이 처리하고 오른쪽으로 연결된 언덕으로 올라가면 몇 그루의 소나무를 배치했다. 언덕 끝부분에 총석정이 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위 주위에는 붉은 꽃이 피어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룬다. 흰 포말까지 표현한 파도는 사실적이면서도 맑은 수채화의 느낌이 난다.
이인문은 주로 탈속의 세계를 그린 산수화로 유명했다. 화원 생활을 그만두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그림은 사실주의적인 면과 개성적인 문인화풍 구사로 당대의 문인들과 예술애호가들에게 높은 평가와 주목을 받았다.
11월부터 '위드 코로나'가 시행 중이다. 더불어 여행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나도 여행길에 올라서 가장 먼저 달려온 곳이 동해다. 비록 통천의 총석정에는 갈 수 없었지만 울진 월송정에서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는다. 바람과 함께 명당에 앉아 망중한을 즐긴다. 이인문의 '총석정'이 부럽지 않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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