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노송도' 속 소나무 한민족 상징
'단오풍정' 왕버들 명절 광경 살려
평범한 잡목 어우러진 '소림명월도'
감나무 돋보이는 시골풍경 '촌가여행'
나라 안녕·집안 무탈 기원 표상이자
일상적 풍경 자리 소박함이 주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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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사직노송도'. 종이에 연한 색, 61.8×112.2㎝, 고려대박물관 소장. |
지우개 같은 봄비였다. 장장 213시간 타오른 울진의 산불을 말끔히 지웠다. 이번 산불은 50년 만의 가뭄도 한몫했다. 마른 나무들은 불쏘시개가 되었다. 강풍의 지원을 받은 불길이 울진을 넘어 삼척까지 불바다로 만들었다. 한밤중에 간신히 몸만 빠져나오다가 발길을 돌려 축사의 문을 열어두고 나온 사람도 있다. 불길이 잡히고 집에 가보니 소 20마리가 고스란히 돌아와 있었다고 한다.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가족의 상봉이 이보다 눈물겨울까. 나무가 죽은 터전에서 사람들은 또 나목처럼 서 있었다.
◆사직단의 노송과 의리로 우뚝 선 소나무
나무는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청정한 이상향을 꿈꾸게 하고, 맑은 공기와 건강을 지켜주는 자연의 심장이다. 나무는 예술가에게도 싱그러운 영감의 대상이었다. 사실적인 형상으로 자연의 미를 선사하는가 하면 상징적인 표현으로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사직노송도(社稷老松圖)'는 작은 체구에 넓게 뻗친 노송의 가지들이 역사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은 우리 산천의 체형과 체질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그림을 그렸다. 백악산 아래 살면서 문인들과 어울려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사직노송도'는 노송에게 바치는 한 시대의 초상화다. 이 사직단(社稷壇)의 소나무는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아린다. 수려하고 훤칠한 소나무가 아닌, 휘어지고 뒤틀린 채 세월을 켜켜이 새긴 키 낮은 소나무다. 신산한 생의 암유 같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생을 바쳐야한다.
사직(社稷)은 토지의 신(神) '사(社)'와 곡물의 신 '직(稷)'을 상징한다. 예로부터 조정에서는 사직단을 만들어 왕이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정선은 왜 사직단 소나무를 그렸을까. 사직의 안녕을 바라며 민족의 정체성을 담고자 한 것이 아닐까. 더욱이 배경을 생략한 채 소나무만 단독으로 그렸다.
세 갈래로 뻗은 소나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반송(盤松)이다. 오른쪽을 향해서 두 갈래로 뻗은 소나무 가지가 신령스럽다. 왼쪽으로 뻗은 가지는 말라 버렸지만 새 순이 돋고 있다. 강인한 생명력은 종묘와 사직을 꿋꿋하게 지킨다. 고난과 역경, 부귀와 영화가 그냥 오는 것은 아니기에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12개의 지지대에 몸을 얹은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화가들이 즐겨 다룬 소재다. 사실적으로 그린 노송이 있다면, 추상적인 생각을 그린 소나무도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가 그렇다.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자인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1804~65)에게 그려준 작품이다.
추사체를 창안한 김정희는 조선 말기 문인화의 붐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성과를 이뤄 경학과 금석학, 불교학 등 다방면에 능통했다. 그런 그가 당쟁의 희생양으로 제주도 유배를 떠나던 날, 사람들은 그의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자 이상적에게 스승 김정희는 여전히 스승이었다. 역관이던 이상적은 연경에 갈 때마다 스승이 부탁한 책들을 구해서 제주도로 보냈다. 1844년 유배생활 5년째 되던 해 여름, 김정희는 '세한도'를 그려서 제자에게 보답한다.
'세한도'는 물기 없는 갈필로 그린 수묵화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황량하고 쓸쓸하다. 집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휘어진 노송이 있다. 그 곁에 젊은 측백나무가 서 있다. 노송은 김정희 자신을 의미하고, 측백나무는 제자를 생각하고 그린 것 같다. 왼쪽에 있는 두 그루의 측백나무가 집을 보호한다. 사실적인 나무가 아닌 상징적인 나무다.
그림 옆에는 '논어'의 한 구절을 적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 제자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세한도'의 나무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꽃 핀 한결같은 의리의 증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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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복 '단오풍정'. 종이에 채색, 28.2×35.2㎝, 간송미술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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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석 '촌가여행'. 종이에 연한 색, 23.5×24.4㎝, 간송미술관 소장. |
◆휴식을 주는 왕버들과 집안을 지키는 감나무
나무는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하지만 때로는 놀이 기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마을 뒷동산의 아름드리나무는 그네를 매어 놀기에 적합하다.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의 '단오풍정(端午風情)'에 등장하는 그네를 보면 안다. 단옷날을 맞아 기녀들이 멱을 감고 그네를 타는 광경의 중심에 나무가 있다.
신윤복은 아웃사이더였다. 남녀의 애정행각을 그렸다는 이유로 도화서에서 쫓겨난 그는 기녀와 양반들의 향락생활에 주목해 그 음지의 빛과 그늘을 회화적인 다큐멘터리로 승화시켰다.
기녀들의 물놀이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이 흐르는 계곡을 경계로 오른쪽에는 4명의 여인이 분주하다. 그들은 벌써 멱을 감고 몸단장을 하고 있다. 왼쪽에는 4명의 여인들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윗저고리를 벗은 채 몸을 씻는데 집중한다.
이 광경의 중심에 늙은 왕버들 나무가 있다. 왕버들 나뭇가지에는 그네가 매어져 있다. 노란색 저고리에 붉은색 치마를 입은 기녀가 그네를 타려고 한다. 기녀의 자태가 아름답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만약 왕버들 나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림은 평범한 목욕 장면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네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왕버들 나무의 존재가 분위기를 살렸다. 그림에 추임새를 더하듯이 단옷날의 행사에 즐거운 놀이를 선사했다.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에 깨가 쏟아진다.
나무 중에는 놀이터를 제공하는 왕버들도 있지만 가까이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감나무 같은 유익한 나무도 있다. 배고픈 시절 감은 훌륭한 군것질거리였다. 사람의 흔적이 사라져도 감나무는 남아서 집을 지키고 추억을 보존한다. 관아재(觀我齋) 조영석(1686~1761)의 '촌가여행(村家旅行)'은 우리네 시골집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조선시대는 남성이 그림의 주인공이었다. 사대부 화가인 조영석은 일상생활을 하는 농부나 여성에게 시선을 맞췄다. 신분이 낮은 아낙네들을 관찰해 사실적으로 그렸다. 새참을 준비하는 촌부나 재봉질 하는 아낙네, 절구질하는 촌부 등이 작품의 주인공이었다.
'촌가여행'은 시골집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화폭에는 집의 한 귀퉁이만 담았다. 지붕 아래 있는 나무 둥치와 감나무에 끈을 연결하여 남자의 웃옷을 말리고 있다. 그 옆에 중년의 아낙이 절구질 중이다. 어깨가 구부정한 아낙은 빛바랜 남색치마에 미투리를 신었다. 그림은 단출하게 그렸지만 현장감이 살아 있다. 감나무가 있어서 더 정이 가는 작품이다.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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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 '소림명월도'. 종이에 연한 색, 26.7×31.6㎝, 1796,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
◆상처 입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잡목들의 응원
울진의 산불은 잡목에서 비롯돼 대형 산불로 번졌다. 금강송마저 집어삼킬 기세였지만 다행히 금강송 군락지는 살아남았다. 잘생긴 나무가 아니어도 모든 종류의 나무는 특별하다. 야산에서 자란 잡목도 건강한 숲의 일원이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소림명월도(疏林明月圖)'에는 잡목들이 은은한 달빛 아래 어깨동무를 하듯 정답게 서 있는 작품이다. 가지가 기지개를 켜듯 봄비를 기다리는 이맘때의 나무들이다. 소박하여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정조의 신임을 한몸에 받은 김홍도는 여러 장르에 재능을 보인 화원 화가다.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나무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 같다. '소림명월도'의 잡목은 막 새순이 돋아나려는 3·4월의 풍경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아주 특별한 소재나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지 않아도 화가의 혜안과 솜씨는 걸작을 빚었다. 작품의 무심한 표정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머문다. 잡목들 사이로 둥근 달이 환하다. 평범한 잡목이 모여 큰 숲이 된다.
나무는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사직단의 노송처럼 나라의 안위를 짊어진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사제 간의 정을 상징하는 소나무와 측백나무도 있다. 가지가 튼실한 나무는 놀이터가 되고, 감나무는 추억을 살찌운다. 화려하진 않지만 달빛을 받은 나무는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그래도 한 그루의 희망을 식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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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희 화가 |
뉴스에 비친 산불지역은 거친 수묵화 같았다. 울창하던 숲이 거대한 숯덩이로 변했고, 평화롭던 삶의 터전이 사라졌다. 집들은 잿더미로 내려앉았다. 대대로 보살피던 무덤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산불이 앗아간 울진과 강원의 산하는 참혹했다. 숲의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50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잠시 잦아들었다. 며칠 전 묘목 시장에 들러 어렵게 구한 감나무를 싣고 텃밭으로 향했다. 아직 초록이 당도하지 않은 산을 배경으로 몇몇 사람들이 희망을 식목하고 있었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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