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원화 경북대 총장 |
'돈을 물 쓰듯이 쓴다'라는 말이 있다. 벼락부자의 얘기가 아니다. 대학은 돈이 없어 허덕이고 있는데, 초·중·고는 돈이 남아돈다고 한다. 모 교육청에서는 코로나 비대면 수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태블릿 PC를 모든 학생에게 배포하기도 하였고, 코로나 대응 명목으로 현금을 나눠 준 교육청도 있다.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는 것이야 정부기관의 역할이지만 이러한 예산집행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정부의 2차 추경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2022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작년 대비 35% 늘어난 약 81조3천억원으로 추계됐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 수입의 20.79%에 맞춰 자동으로 연계되어 배부되도록 산정식이 맞추어져 있다. 국가의 세입이 증가하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자동으로 증가하는 구조이기에 교부금은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지난 10년 동안 학생 수는 20% 줄었다. 그럼에도 교부금은 오히려 2.5배 증가했다. 학생 1인당 교부금인 10년 전 625만원에서 1천528만원으로 2.5배 늘어났다. 인적자원이 유일한 자원인 한국에서 우수한 인적자원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고등교육에 대한 예산투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교부금 배정 구조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예부터 국가를 새로 건립한 왕들은 국가의 틀을 다지기 위해 공통적으로 주력한 사업이 있었다. 바로 치수(治水) 사업이다. 물을 잘 관리하는 것은 농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경제의 기본이었기에 치수를 위해 노력했다. 단순히 농업뿐만 아니라 물류와 국방을 위한 중요한 인프라라는 점에서 치수사업은 왕조의 명운과도 직결되는 핵심 주력사업이었다.
현대 국가에 와서는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예산이 곧 과거 농업사회 왕조국가의 물과 같다. 필요한 곳에 예산이 흘러가도록 하고 과도한 예산은 줄이면서 예산의 흐름을 잘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재정의 흐름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물길이 잘 관리되지 못해 필요한 곳에 가지도 못하고, 물이 넘치는 곳에 계속 물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같은 동네임에도 어느 곳에서는 가뭄을, 다른 곳에는 홍수를 겪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물이 넘치는 곳은 물을 빼고, 물이 부족해 땅이 갈라지는 곳으로 물길을 내야 한다.
필자는 이전의 칼럼들에서 수차례 빈약한 대학재정의 문제와 지역의 위기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나마 빈약한 대학재정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인적 자원들도 빠져나가고 있다. 14년간 동결된 등록금은 물가상승률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사업 확보에 사활을 걸고 사업권을 확보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 지역의 대학들은 지자체와 함께 힘을 모아 물길을 만들어내고자 열심히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 결과 대구와 경북의 지자체와 대학이 함께 노력해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 사업(RIS)'에 선정됐고, 지역의 다수 대학이 '산학연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3.0)'에 선정됐다.
초·중·고로 과다하게 유입되는 예산의 일부를 대학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낸다면 대학은 현재보다 나은 성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교육교부금 배정방식은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 필요한 곳에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내야 할 시점이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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