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30416010001942

영남일보TV

[박지형의 스포츠와 인문학] 2022년 11월22일 아르헨티나의 패배…메시는 월드컵을 들어올렸고 도로공사는 흥국생명을 상대로 업셋 우승을 일궜다

2023-04-21

2023041601000463300019422
2023041601000463300019421
박지형 (문화평론가)

작년 11월22일. 그날은 늘 그냥 지나치던 역에서 내렸다. 김천역이었다. "우리 인생에서 김연경의 경기를 실제로 볼 수 있는 몇 안 남은 기회야." 그 말에 나를 따라나선 친구와 함께였다. 내리자마자 빵집부터 찾아보았다. 소설가 김연수의 어머니는 분명 김천역 근처에서 빵집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매장은 보이지 않았다. 김연수가 그 빵집에서 작가를 꿈꾸던 시절, 그리고 내가 그 김연수의 산문집을 읽었던 시절로부터 세월은 너무 많이 흘러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경기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역 주위를 조금 벗어나니 김천은 놀랍도록 조용해지고 말았다. 30분쯤 걸어가다 보니 '미스터 트롯'으로 유명해진 가수 '김호중'의 '소리길'이 우리를 반겼다. 벽화, 포토존, 스토리보드 등이 다채롭게 꾸며져 있었다. 근처에서 냉면을 먹고 나오면서 사장님께 "김호중 집이 이 근처입니까"하고 물어보니 그게 아니라 그가 근처 '김천예고' 출신이라 여기에 그의 거리가 조성되었다고 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니 벚꽃으로 유명한 교동 연화지였다. 그리고 또 10분 정도 더 걸으니 드디어 그날의 목적지인 김천실내체육관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은 밋밋한 외관. 그러나 프로배구단이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깔끔한 구장임에는 틀림없었다. 경기장은 시작 30분 전에 거의 만석이 되어 있었다. 김천에는 달리 놀 것이 없어 배구 경기가 있는 날은 모두들 경기를 보러 간다는 말을 드디어 실감했다. 경기의 관전문화는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성숙해져 있었다. 숨겨온 소주를 마시는 아재들도, 선수들에게 쌍욕을 퍼붓는 '토쟁이'들도 없었다. 심지어 지정좌석에서 벗어나 난간이나 통로에 서서 관전을 하는 것도 안전요원들에 의해 정중하게 단속되고 있었다.

경기는 팽팽한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으로 흥국생명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김연경 핑계로 친구를 꼬드기긴 했지만 오랜 도로공사의 팬인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약이 바짝 올라 있었다. "흥국생명은 김연경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도공에는 나도 이름을 들어본 국대 선수가 많네. 근데 왜 도공이 밀리지?" '배알못'인 친구의 질문에 도긴개긴의 문외한인 내가 대답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저 카트리나라는 도공의 용병 선수가 상대 외인 옐리나에 비해 기량이 딸리잖아. 원래 여배는 용병 농사가 반이거든." 응원 팀이 패배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했던 늦가을의 김천 여행은 꽤 무난하게 종착점을 향하고 있었다. 난 무궁화 좌석에 등을 기대며 푸념했다. "이번 시즌도 우승은 텄구나. 올 시즌 끝나면 박정아, 배유나, 정대영, 문정원이 다 FA로 풀리는데… 암울하네." 그런데 열차 안에서 난 또 다른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방금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에게 1-2로 졌다는 소식이었다. "이 자식들 빠져가지고. 쯧쯧, 메시는 이제 월드컵 우승 없이 커리어 끝나겠네."

기차는 예정대로 몇 분 뒤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뒤의 세상은 결코 11월22일, 무궁화에서 내다본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리오넬 메시는 기어코 월드컵을 들어 올렸고, 도로공사는 시즌 시작 후 내리 5번을 진 흥국생명을 상대로 치른 챔피언결정전에서 2패 후 3승이라는 공전의 업셋 우승을 일궈냈던 것이다. 그러니 오늘 4월21일, 당신의 열차가 어떤 절망의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 해도 너무 슬퍼하지는 마시라. 모르지 않나. 무능한 용병 카타리나가 쫓겨나고 MVP 켓벨이 김천에 왔듯 우리의 삶에 또 뭐가 가고 뭐가 올지는, 닥치기 전에는 아무도 미리….

문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