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회의 동행 영부인 김건희
공적인 영역 동선 벗어나 명품쇼핑
세금 투입되는 의전·경호 사적 이용
美 백악관 여인들은 '부드러운 외교'
문화교류와 지역경제 지원 일환으로
현지 일용품·공예품 등 쇼핑 목록에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3일(현지시각) 폴란드 바르샤바의 영빈관인 벨베데르궁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의 부인 아가타 코른하우저 두다 여사에게 바이바이 플라스틱 에코백과 부산엑스포 키링을 선물하고 있다. 연합뉴스 |
리투아니아 매체 '주모네스'는 지난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한 옷가게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주모네스 홈페이지 캡처〉 |
"한국 영부인의 표절 의혹 재차 제기"〈뉴 스트레이츠 타임스〉, "한국 영부인, '오드리 햅번 흉내' 사진의 '빈곤 포르노' (주장자) 고발"〈텔레그래프〉, "한국 영부인, 위조 자격증 혐의로 기소당하지 않을 수도"〈네이션〉, "한국 영부인 조사 : 더불어민주당 특검법 추진"〈아시아 뉴스 네트워크〉, "일곱 가지 한국 영부인 스캔들: 보석에서 위조까지"〈시엔비시〉, "한국 영부인 베트남 방문 중 멋진 스타일 유지"〈브이엔익스프레스〉, "한국 영부인 김건희 아부 다비에 패셔너블한 첫발"〈내셔널〉….
구글 외신판에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영문 이름을 치면 뜨는 제목들이다. 주로 스캔들 아니면 패션, 두 가지다.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의 국제적 위상이 이렇다는 말이다.
좀 잠잠해질 때도 됐는데 어째 끝이 없다. 남편 윤석열의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불어 닥친 김건희발 바람은 자격증 위조와 논문 표절에다 사문서 위조·행사(어머니와 공범) 혐의, 주가 조작 혐의 같은 불법으로 시작해서 김건희 녹취록, 비선 의혹, 보석 미신고 의혹, 무속인 개입 의혹 따위로 줄줄이 논란을 낳았다. 좋은 말로 논란이지 사실은 모조리 위법성을 따져야 할 사건들이다. 찍소리 못하는 검찰이 뭉개고 있을 뿐.
그러더니 또 터졌다. "한국 영부인, 쉰 살의 스타일 아이콘 : 빌뉴스에서 유명 매장 방문하다" 리투아니아 언론 〈주모네스〉의 지난 12일자 제목이다. 〈주모네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11일 명품 쇼핑 사실을 전했다.
저지레도 이런 저지레가 없다. 명품 구입 따위를 나무라는 게 아니다. 그런 것쯤이야 사든 말든 개인사일 뿐이다. 다만 명품 쇼핑에도 때와 장소란 게 있다. 국제 외교판에 나선 대통령을 수행한 그 부인의 동선은 공적 영역이다. 다른 말로 시민이 뼈 빠지게 일하고 바친 혈세가 투입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시민은 대통령 부인이 명품이나 사라고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에 보낸 게 아니다.
게다가 가뜩이나 대통령 부인 일가가 지닌 땅 쪽으로 방향 튼 양평고속도로 수정안을 놓고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물난리까지 겹쳐 숱한 시민이 죽어 나가는 판이다. 대통령 부인이라면 명품을 잠깐 잊고 안타까운 시늉이나마 해야 할 시국이다. 그마저 맘에 없다면 물덤벙술덤벙이나 말든지.
보라. 동네 영천댁에 물만 들어도 이웃이 모두 걱정하며 낯빛과 몸가짐을 조심하는 게 우리 정서 아니던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판국에 명품 쇼핑 따위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하물며 대통령 부인이란 자가! 간이 커도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 5월 대통령 윤석열의 미국 국빈 방문 때 〈워싱턴 포스트〉가 옷의 유행만 좇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인 'clotheshorse(빨래걸이)'로 김건희를 묘사했을 때만 해도 너무 나갔나 싶었던 게 이번에 보니 딱 그 짝이다.
정신머리 없는 대통령실이란 것도 가관이다. "명품 가게 호객 행위에 어쩔 수 없이 들렀지만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이걸 말이라고!
명품 가게 두 부롤리아이의 지배인이 "(대통령 부인이) 예고 없이 들러 물건을 구입했고, 이튿날 한국 대표단 몇이 다시 와서 추가로 구입해 갔다"고 이미 밝혔다. 가게 지배인이 한 나라 대통령 부인의 쇼핑을 놓고 거짓말시킬 만큼 용감하리라 믿는 이는 아무도 없다.
더구나 경호원, 수행원 16명이 둘러싼 대통령 부인 행차에 감히 누가 다가가 호객 행위를 한단 말인가? 농담치곤 지나치다. 아니면 대한민국 대통령실이 대통령 부인의 동선을 팽개칠 만큼 엉망진창이든지.
30년 넘도록 외신판에서 숱한 대통령과 총리를 취재해온 내 경험에 비춰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부인의 동선이 호객 행위로 바뀌는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대통령의 외국 방문이란 건 경호와 의전 탓에 분 단위로 끊어 철저한 동선 관리 아래 비밀스레 이뤄진다. 방문국 정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는 대통령 부인의 동선도 말할 나위 없다. 대통령 부인이 두 정부의 동선 관리 없이 길 가다 호객 행위로 명품 가게에, 그것도 다섯 군데나 들릴 수 없다는 말이다. 대통령실은 말부터 배워야.
으레 대통령 부인들이 외국 방문 때면 쇼핑도 한다. 개인의 입맛도 있겠지만 주로 현지의 문화 상품이나 예술품 같은 것들이 바구니에 담긴다. 이런 걸 '부드러운 외교(soft diplomacy)'의 일환으로 보기도 한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가치외교의 교범으로 삼는 미국을 보자. 1997년 대통령 클린턴의 부인 힐러리는 인디아 방문 때 전통 공예품을, 2013년 대통령 오바마의 부인 미셸은 중국 방문 때 전통 시장에서 일용품을, 2021년 대통령 바이든의 부인 질은 일본 방문 때 장난감을 몫몫이 사 들고 갔다. 이런 게 백악관 여인들의 공식적인 외교여행 쇼핑 목록이다. 그 대통령 부인들은 저마다 문화 교류와 지역경제 지원을 내세웠다. 그러고도 미국 안에서는 공식 외교를 벗어난 사적 행위라며 보수 원칙주의자들 입길에 올랐다. 세금이 들어가는 대통령 부인의 동선 하나하나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백악관 여인들과 견줘보면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명품 쇼핑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거긴 문화 교류도 지역경제 지원도 외교적 가치도 없었다. 오로지 개인의 사치뿐이었다. 공적 외교의 사유화로 세금을 낭비한 대통령 부인의 욕망을 반드시 따져야 하는 까닭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 부인한테 어떤 권능도 준 적 없고 사적 용도로 세금을 쓰도록 허용한 적도 없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은 대통령 후보 윤석열의 공약에서 비롯되었다.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 폐지로 말썽을 일으킬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엔 대통령 부인을 관리할 만한 조직이나 기구가 없다. 시민은 대통령 부인을 누가 거들고 누가 일정을 짜고 누가 따라다니는지조차 모른다. 거긴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알 길이 없다. 대통령 부인이 모든 걸 맘대로 할 만한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견제도 감시도 없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들었다는 뜻이다. 제왕적 권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대통령 부인의 일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마땅히 그 남편 몫이다. 한 가정의 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 부인은 아무 직책도 없지만 의전과 경호에 세금이 투입된다. 그리고 대통령과 함께 공적 영역을 공유한다. 헌법상 개인이 아닌 조직인 대통령에 그 부인이 포함된다는 뜻이다. 그 조직의 최고 책임자는 마땅히 대통령이다. 싫든 좋든 대통령 부인의 관리는 대통령 몫이다.
한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입이 없다. 그 부인도 마찬가지다. 애초 용산이란 동네엔 책임도 사과도 없다. 무슨 일이든 뭉개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이 부부 맘속엔 시민이 없다는 증거다.
권력, 영원하지 않다! 길어야 4년이다. 필리핀 전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이자 세기적 사치꾼으로 이름난 이멜다도, 2천700만달러짜리 핑크 다이아몬드를 낀 사치의 여신으로 불린 말레이시아 전 총리 라지브 라작의 부인 로스마 만수르도 다 겪은 일이다. 이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부인도 두려운 마음으로 역사를 공부하기 바란다. 시민에 대한 예의이고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방콕특파원·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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