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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책방 불빛 아래에서

2023-08-10

[문화산책] 책방 불빛 아래에서
신민건<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2020년 초, 길고 어두운 터널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 감염증은 많은 산업을 할퀴었고, 뭇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할퀴어내었다. 당시 상업 영화관 매니저로서 마주한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언제 그칠지 모르는 상황 앞에서 두려움은 팽배해져 갔다.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터널 속에서 때때로 안온한 시간을 마주하곤 했는데, 어느 작은 책방 불빛 아래에서의 이야기다.

전염병이 기승을 부리니 우습게도 책장의 먼지들이 털어졌다. 표지가 예뻐 사뒀던 책을 꺼내어 읽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연히 '책방일지'를 마주한 건 독서모임을 해보겠다고 찾아 나선 길에서였다. 책방의 대표 두 사람은 젊었고, 그들이 일군 책방 곳곳엔 푸른 손때가 묻어 있었다. 독서모임을 시작하고 두 달에 네 번, 네 권의 책을 읽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홀로 읽을 땐 알 수 없던 감상이 무심결에 튀어나오곤 했다. 정해진 인원 이상 모일 수 없었고, 마스크를 벗을 수도 없었지만 처음 만나는 이들과 웃고 떠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흥미로웠다.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 모두, 책방 불빛 아래에 앉아 자신만의 책방일지를 써 내려갔다. 코로나 블루로 지친 서로의 마음을 보듬으며 푸른 손때 위에 새파란 지문을 남기고 있었다.

2023년, 길고 어두웠던 팬데믹 터널을 어느덧 지나온 듯하다. 책방일지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인다.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은 독서모임으로 모이고, 음악적 취향을 찾고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픈 이들은 '대명음악디깅클럽'으로 모인다. 5일 동안 1㎞를 달리며 몸과 마음의 상태를 기록하는 '오일러닝일지', 자신에게 맞는 경제 분야와 투자법을 찾는 '경제슬세권', 글을 쓰기 위해 글감을 찾는 '글파티' 모임까지. 책과 글을 사랑하고, 음악을 좋아하며,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모든 청춘이 책방에 모여 있다.

살아가며 언제 어느 때 또 다른 터널이 찾아올지 모른다. 코로나19와 같은 불가항력적 시대 상황일 수도 있고, 아주 사적인 고민이나 문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터널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터널을 지나며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니 무력감과 두려움이 터널처럼 밀려올 때 작은 불빛을 찾아 나서 보자. 가장 어두운 때 불빛을 찾아 일구어낸 것들이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자신을 단단하게 바쳐두고 있을 테니. 오늘도 대명동 어느 골목, 책방 불빛 아래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머물며 저마다의 불빛을 찾아가고 있다. 신민건<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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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건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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