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범죄자 많이 만나
종종 회의감 들기도 하는데
얼마전 만난 활동지원사는
직업이 사랑스럽게 보이게
마법을 일으키는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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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진 변호사 |
형사 사건을 주로 하는 변호사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범죄자이다. 물론 재판 과정에서는 무죄추정주의가 지켜져야 하고, 변호인은 그 누구보다 이를 엄격하게 실천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런 사람들을 일상적
으로 만나야만 하는 일은 꽤 피곤한 일이다.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고도 뻔뻔하기 짝이 없고,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보다는 범죄에 대한 처벌의 결과가 자신의 미래에 끼칠 나쁜 영향을 계산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거나, 상식과 도리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주장으로 변호인을 곤혹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다.그래서 어쩌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너무 기뻐서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일하다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어떤 직업을 가졌든 다 기쁘겠지만, 파렴치한들이 득실득실한 이 바닥에서는 그 감정이 몇 배가 된다. 얼마 전에 만난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그간 활동 지원을 해 온 장애인이 내가 국선 사건으로 맡은 피고인이었다. 그 피고인은 지적장애가 있어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면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웠는데, 재판의 언어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어서 그는 혼자 재판을 받기 어려웠다. 수년간 그를 지원해 온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재판 내내 참석을 해서 개인 통역인 역할을 해 주었다.
단단하고도 지혜로우면서도 헌신적이신 그분을 생각하면 사건이 끝난 지금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선생님은 활동지원 등급을 받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을 보조하고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 돌봄 서비스 제도에 따라 지자체와 그(내 피고인)에 대한 활동지원 계약을 맺고 하루 4시간씩 그를 지원했는데, 그가 어떤 범죄로 구속되면서 계약은 자동 종료되었다. 그를 도운다고 더 이상 활동비를 받을 수 없는 데도, 선생님은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 하셨다. 그가 살던 임대아파트, 인터넷, 휴대폰 등등 각종 계약 해지를 해주려고 그가 있는 구치소를 수도 없이 오가며 수많은 서류를 작성해 주었고, 임대아파트에 있던 그의 짐을 자기 돈을 들여 옮기고 보관업체에 보관까지 해 주었다. 재판에 나와 진술을 돕는 일도 아무런 수당을 받지 못 하는 일이고, 국선변호인인 내가 그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그분께 도움을 청할 때도 아무런 보수를 드리지 못 하는 데도 선생님은 기꺼이 시간을 내 주셨다. 왜 그렇게 하시냐고 물었더니 그분의 답이 이랬다. "그 사람, 가족도 없고 아무도 없어요. 저 아니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요. 계약이 끝났다고 인연마저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는 중형을 받아 교도소에 있는데, 그분은 그 먼 교도소를 정기적으로 다니신다.
그렇다고 연민으로 그를 감싸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선생님은 수사 과정에서,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경험한 대로 진술했는데, 그중에는 내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도 상당히 많았다. 또 활동지원을 한 몇 년 동안 그 사람이 선생님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선생님은 따끔하게 주의를 주고 그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가르쳤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동안 이 직업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심지어 '이 직업이 아니었다면 저런 좋은 분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하며, 종종 회의감이 들기도 했던 이 직업이 사랑스럽게 보이고, 의욕도 솟아난다. 좋은 사람은 그런 마법을 일으킨다.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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