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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지옥 같은 삶, 한센인 애환 서린 그 섬에 서다

2024-07-19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지옥 같은 삶, 한센인 애환 서린 그 섬에 서다
옛 시간 속의 한센병 할머니. 한센병은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이다.


소록도 길은 살아있다. 바다가 풍기는 푸른 갯내, 마치 시(詩) 같은 난대의 녹색 잎이 허공에 한들거리는 그 길은 싱그럽다. 나는 늘 내 안으로 이어지는 길을 꿈꾸지만, 작은 사슴 긴 목을 연상케 하는 소록도 길은 나를 지나고 너를 지나고 멀리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는 아련한 길이었다. 7월의 오전,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 윙윙 불어도 이곳은 여전히 아름다운 섬이다. 그러나 이 길에서 보는 아름드리 해송과 이곳 바람은 나에게 친밀한 자연의 길잡이다. 득량만에서 애면글면 밀려오는 바다 숨결과 조상의 뼈를 닮은 난대 나무들의 수려하고 여문 숨결은 나의 숨결에 젖어 하나의 숨결이 된다.

저 바다 어류에게 일어나는 일, 이 땅 짐승들에게 일어나는 일, 그건 나에게 일어나는 일과 같이, 한 손안에 있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으므로. 초입에 수탄장이라는 안내가 있고 내용은 이러했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도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런 미감아인 아이는 부모와 떨어져 보육소에서 산다. 당시는 한센병이 유전되고 또 전염된다고 믿었기에 그러했다. 그러나 부모 자식이 서로 만나 함께 살고 싶은 인륜의 정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이곳 수탄장에서 면회가 이뤄졌다. 길을 사이에 두고 자녀들은 반드시 바람을 등지고, 전염을 막기 위해 안부를 묻거나 눈으로만 서로를 확인하던 시름과 탄식의 장소였다. 여기도 비가 내린다. 저 비속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한센병 환자들의 눈. 그들이 흘리던 눈물. 그들 생명의 꿈과 희망을 속절없이 거두어간 서러웠던 순간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한달에 한번 자식과 면회 허용
길 양옆으로 갈라져 눈으로만
가슴아픈 만남의 장소 수탄장

오그라든 손발로 공사에 동원
숱한 희생으로 중앙공원 탄생
감금실·검시실 인권사각지대
암울한 세월 껴안은 탄식의 섬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지옥 같은 삶, 한센인 애환 서린 그 섬에 서다
소록도 중앙공원 내 구라탑.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싸목싸목 느리게 걸어도 어느덧 중앙공원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의 섬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 2월24일,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자혜의원을 개원한 게 시작이다. 그 후 형언할 수 없는 숱한 애환이 소록도에서 야기됐다. 그 피고름 같은 시간이 진득하게 흘러가고, 인간의 영혼이 그 사람의 몸에서 싹트는 어떤 것이라면, 한센병 환자들의 영혼은 그야말로 애환으로 뭉쳐진 아픔과 신음의 추상화일 것이다. 이제 길 따라 숲이 나오고 그 숲 일부를 점령한 난대의 나무들이 무성하다. 그 숲은 지금까지 무얼 말하고 있는지, 또 누굴 기다리는지, 깊은 근심 애수가 흐르는 침묵의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공원 초입에 있는 감금실과 검시실에까지 그 숲의 환영이 따라와 옛 시간의 기억에 어두운 그늘을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인권 사각지대인 이곳에서는 별의별 해괴한 사단이 많았다.

감금실을 둘러본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병원장은 징계 검속권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환자들을 통제했다. 병원장은 재판 없이 환자들을 감금할 수 있었고 출소 시에는 단종 수술을 시행했다. 암울한 과거사다. 1935년에 건축된 옆의 검시실로 간다. 방 한가운데 돌로 만든 검시대가 놓여 있다. 한센병 환자가 죽으면 누구든지 이곳에서 검시 절차를 거쳐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입구의 넓은 방은 검시실, 안쪽 방은 영안실로 사용됐다. 그래서 소록도 한센병 환자는 일생에 세 번 죽는다고 한다. 한센병이 확진되면 한 번 죽고, 검시실에서 해부하면서 두 번 죽고, 그 후 화장을 하면서 세 번을 죽는다고 한다. 태어나지 마라, 죽기가 괴롭다. 죽지 마라 태어나기가 괴롭다는 어느 고승의 전언이 귀를 파리하게 한다. 그러한데 한 생에 세 번씩이나 죽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지옥 같은 삶, 한센인 애환 서린 그 섬에 서다
소록도 검시실의 검시대. 소록도는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 자혜의원을 개원한 게 시작이다.

이제 중앙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우중충한 하늘에, 비는 계속 내리고, 빗소리는 참으로 서러운 탄식의 울림으로 전신을 혼곤하게 했다. 1936년에 착공, 1940년에 준공된 중앙공원은 당시 전적으로 한센병 환자들의 강제노역으로 조성됐다. 여러 곳에서 가져온 각종 정원수와 다른 지역에서 운반된 큰 바위들은 목도꾼들에 의해 옮겨져 아름다운 공원으로 탄생했다. 이렇게 어려운 공사에 강제 노역으로 동원됐던 한센병 환자들의 희생은 실로 컸었다. 과로, 치료 부족으로 죽어 나가는 자도 있었고, 일하면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한센병 환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한센병 환자들은 그 고통을 모르므로 오그라든 손으로 발로 그 힘든 공사를 했다고 한다. 저 비애가 흐르는 숲에 7월의 비가 쉬지 않고 내린다. 숲에는 아직도 그리도 혹독했던 한숨과 슬픔을 입에 가득 물고 희생되어간 한센병 환자들의 영혼이 떠돌고 있을까.

조금 더 걸어가면 구라탑이 나온다.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 불행의 대명사였던 한센병 환자들에게 꿈과 희망, 치유의 주술 같았던 저 신념의 글귀가 나의 머리 위에서 한껏 물결친다. 그게 단지 비 때문이었을까. 더 나아가니 연못이 나오고 물 위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상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벽돌 공장이 있었다. 자급자족해야 했던 소록도에서 일제 강점기 당시 집들은 거의 벽돌로 지었다. 따라서 여기는 반지하로 파서 벽돌을 굽어내는 가마터였다. 벽돌 생산 와중에 뿌연 먼지, 부족한 약과 음식 그리고 벽돌 수요가 많아지자 불덩이 같은 가마를 식히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 다수의 한센병 환자가 다치거나 죽어 나갔다. 지금 예수님상이 있는 곳이 그 가마터 자리다. 그 후 이곳이 음산하고 괴기해 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연못을 조성해 그 위에 예수상을 세웠다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기적을 보여주시고, 성한 사람보다 나병환자를 더 가엽게 여기신 예수님.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더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이 그들의 영혼을 감싸고 위로하셨을 것이다.

이어 한하운 시비, 이춘상 6·20 기념비 등을 봤다. 이미 연민과 애환, 근심과 탄식의 감정이 정수리까지 차올라 두 눈은 충혈됐고, 저 빗물이 핏물이 될 것만 같은 착각에 전율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모두가 꽃같이 아름답고 꽃같이 서러워라'는 시어로 방문객을 맞이하는 박물관을 둘러본다. 거기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사용했던 은어 '몰라 3년 알아 3년 썩어 3년' '물병 깡병'과 그들이 사용했던 '저고리와 바지' '개우 밥' '개인 치료용 칼'이 그리고 소록도 이야기에서는 '순바구 길, 십자봉 소풍 길'의 설명이 더 애절하고 기억에 남는다.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지옥 같은 삶, 한센인 애환 서린 그 섬에 서다
소록도의 애환의 추모비. 연민과 애환, 근심과 탄식의 감정이 차올랐다.


밖으로 나와 소록도 교회를 탐방한다. 소록도 병원 개원 초기 환자 중 몇 명이 섬에서 도망하다 붙잡혀 조사를 받았는데, 이들이 '우리는 기독교인인데 신앙의 자유가 없어 이 병원에서는 못 살겠다'고 하자 당시 일본인 원장이 그 말을 받아들여 1922년 10월2일 일본 성결교회 목사인 다나카 신사부로(田中眞三郞)를 초빙해 2일간 전도 집회를 시작한 것이 처음의 소록도 교회였다. 교인들이 입에 매달고 살았던 "당신은 던져진 것이 아니라 뿌려진 것입니다." 성경 구절에서 따온 이 말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구원의 힘이 되는 염송이었다. 마가복음 4장 26절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또 히브리서 10장 10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리고 마태복음 4장 16절에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어 있도다 하였느니라"가 한센병 환자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성구들이었다. 말하자면 소록도는 기도의 섬이고, 힘든 육신을 이끌고 영혼의 호흡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곰비임비 기도하는 성(聖)스러운 섬이었다.

아직도 비는 내리는데 소록도를 떠나면서 한하운의 '전라도 길'의 시구가 뿌려진 사랑을 만든다.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슬픈 작은 사슴의 섬, 소록도…지옥 같은 삶, 한센인 애환 서린 그 섬에 서다

글=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강경애 여행 사진작가

☞문의 : 전남 고흥 관광안내소 (061)830-5637, 5244

☞주소 : 전남 고흥 도양읍 소록해안길 65

☞트레킹 코스 : 주차장-수탄장-감금실 검시실-중앙공원 내-구라탑-연못 예수님상-보리피리 시비-국립 소록도 박물관

☞인근 볼거리 : 연홍도, 쑥섬, 능가사, 영남 용바위, 녹동 바다정원, 우주 발사 전망대, 우도 무지개 다리, 나로도 편백숲, 분청 문화 박물관, 거금도 생태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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