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
1962년 8월9일 헤르만 헤세가 타계했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으로 유명한 헤세는 조국 독일이 나치화되자 스위스로 망명했다. 헤세는 내면 탐구 경향의 명작들을 남겼는데 '싯다르타'도 그중 한 편이다.
불교 창시자 석가모니가 '싯다르타' 주인공 싯다르타의 직접 모델은 아니다. '싯다르타'가 구도의 길을 찾는 종교소설임은 분명하지만 석가모니의 생애를 담은 전기소설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방송 출연자가 피츠제럴드 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관련해 "나도 개츠비처럼 위대해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개츠비는 난잡한 사생활 끝에 총에 맞아 죽는 인간이다. 그 출연자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도입부만 읽어도 석가모니와 무관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카스트 제도에서 최상 계급인 브라만 가문 출신이다. 석가모니는 제2계급인 크샤트리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싯다르타도 석가모니처럼 수행에 정진한다. "싯다르타는 기다리고, 명상하고, 단식 정진합니다. 강물에 던져진 돌이 가장 빠른 방법으로 물속에 가라앉듯이 싯다르타는 세상 일을 관통하지요. 아무것에도 마음 쓰지 않고 말입니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목표(깨달음)에 역행하는 것이면 그 무엇에도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는 열반으로 이끄는 마법은 없으며, 마법을 부리는 귀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싯다르타는 누구나 해탈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석가모니도 아힘사[不殺生] 등 교리를 준수하고 성심으로 수행하면 모두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뒷날 한 불자가 수행 끝에 아미타 부처로 성불하는 것도 그같은 불교적 인식의 결과였다.
현진건 장편 '무영탑'의 남녀 주인공들도 소설 대단원으로 미뤄볼 때 다들 서방정토에 갔다. 석가탑과 영지(影池) 불상의 완성이 내세적 해피엔딩을 상징하는 장치인 까닭이다.
그러나 '무영탑'은 종교소설은 아니다. 국선도파(國仙徒派)와 민중들은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당학파(唐學派)들은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은 이 소설이 민족문학작품임을 말해준다. 신라시대의 당학파는 독립운동시기의 친일파에 비견된다.
겉을 보고 사람 속을 분별하지 못한다. 문학작품도 제목으로 그 내용을 단정할 수 없다. 헤세와 현진건의 생애에는 무심하면서 입으로는 "존경"한다는 '별유천지 비인간'들이 있다. '마법은 없다'고 한 싯다르타가 무안해 하리라.
<소설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