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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형식의 길] 대(大) 백화점 시대

2024-11-20

[길형식의 길] 대(大) 백화점 시대
길형식 (거리활동가)

조선 내륙 상업 도시의 대명사였던 대구. 대백과 동백의 백화점 라이벌 대전 이전,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대구에도 백화점 대전이 존재했다. 1930년대 대구는 다수의 일본인 자본과 소수의 조선인 자본이 각축전을 벌이던 대(大) 백화점 시대. 그 시절 식민지 자본에 당당히 맞서 순수 민족 자본으로 지어진 백화점이 있었다. 바로 무영당이다.

1930년대 당시 대구의 백화점은 북성로의 미나카이, 동성로의 이비시야, 서문로의 무영당, 반월당의 반월당이 대표적이었다. 대구 최초의 백화점은 1932년 지어진 이비시야 백화점으로 당시 최고층 건물이었다. 1934년에는 미나카이 백화점이 지어졌는데, 대구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 이후 차병곤이 1936년 반월당 백화점을, 이듬해 1937년 이근무가 무영당 백화점을 개업했다.

개성 출신 자본가 이근무는 약관의 나이에 무영당 서점을 개업 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개성상인으로서 저력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그는 백화점을 세울 결심을 한다. 경성의 5대 백화점 화신, 미쓰코시, 하라다, 초지야 백화점 등을 견학 후 남긴 그의 일기는 잡지 '삼천리'에도 실렸다. 1937년, 그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4층 양옥의 위풍당당 무영당은 문을 열었고, 민족 자본에 빛나는 대구 상계의 자랑, 남조선의 대백화점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화제를 일으켰다.

무영당은 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는데 서화전, 사진전은 물론 독창회도 개최됐다. 동요 시인 윤복진의 동요집 발간과 화가 이인성의 전시, 시인 이상화 작품 발표도 이곳을 통해 이뤄졌다. 일제강점기 대구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자 구심점 역할을 하며 지역 문화 예술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해방과 6·25동란 이후 무영당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폐허로 방치되던 중 철거 위기를 맞지만, 철거 직전 대구시의 매입과 한국부동산감정원의 후원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넘기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대구시와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창작자 팀들은 죽어가던 건물에 도시재생을 통해 생명의 온기를 불어넣었다. 로컬의 근현대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속 가능한 플랫폼 '무영당 디파트먼트'로 재탄생한 것. 새롭게 탈바꿈한 무영당은 문화적 재화를 통용하는 복합문화백화점으로 카페, 팝업스토어, 전시, 공연, 세미나 등 다양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소비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다시금 출발선에 선 무영당의 지나온 87년보다 앞으로의 87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거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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