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의 다양한 얼굴
디아스포라 영화제 이야기
봉사활동과 사람들의 연결
이민자와 정치의 접점 찾기
한국 정치에 필요한 변화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새스커툰에는 세계 최대의 피카소 컬렉션을 가진 미술관이 있다. 이 미술관에는 작은 영화관이 있는데 자주 공동체 상영 행사를 진행한다. 영화제 수상작이나 독립영화 등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주제와 관련된 특정 커뮤니티와 함께 관람하고 패널 토론회를 갖는 형식이다. 지난 주말, 이 극장에서 디아스포라 영화제가 열렸다. 이란 출신의 여성 이민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비영리단체, 아프가니스탄 난민 해외 대피 사업을 하는 비영리단체, 새스커툰 시, 한인회와 필리핀인 커뮤니티, 그리고 미술관이 협력하여 주최한 행사로 3일간 5편의 영화상영과 커뮤니티 패널토론회 등이 이어졌다.
파리에서 음식배달을 하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망명신청자의 이야기를 담은 Souleymane's story, 필리핀계 캐나다인 여성 입주 돌봄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 Inay, 영국 광산촌의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이야기인 The old oak, 억압적인 사회환경 속 아프가니스탄의 외딴 산간지대에서 스키경주를 통해 하나가 되는 지역사회의 이야기를 다룬 Champions of the golden valley,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제롬 유의 작품으로 두 자녀와 함께 캐나다 평원지대의 작은 마을로 이주해 지역농부들과 함께 야생 개를 도태하는 일을 하게 된 한국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Mongrels.
영화의 내용과 등장인물들만큼이나 영화제 조직위원회 봉사일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이란 여성들의 자유와 권리 옹호를 위해 시작한 비영리단체의 임원 중 한 명은 이 도시에 정착한 지 20년이 지난 이란출신 여성 치과의사로, 아동복 디자이너이자 여성 사업가인 이란인 친구와 함께 나타났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대피업무를 하는 단체의 임원은 최근에 뉴욕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며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이처럼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 중에는 후에 정치로 입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11월 초에 있었던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는 새스커툰 시 최초의 흑인 시의원이 탄생했다. 지난 1년간 몇 차례 협업을 하기도 했던 그는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로 우리 도시의 다양한 민족문화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기관의 설립자로 10년이 넘게 활동해왔다. 시의원들은 시의회에서 정한 전략적 우선 순위 분야에서 리더십 역할을 수행하며 정치인으로서의 기초를 다진다. 커뮤니티 안전 및 복지, 인필 (infill) 및 성장에 대한 참여, 레크리에이션과 문화 및 여가, 지역 계획, 도심 개발, 교통, 스마트 시티,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이다. 전직 시장도 시의원으로 활동하다 시장 선거에 출마해 시장이 되었다. 소규모 상인으로 출발해 사업의 규모가 커지며 재력을 갖게 되면 정치인으로 변모하는 해외 한인사회의 전형적인 여정과는 다른 방식이다.
한국은 연일 정치인들과 관련한 뉴스로 시끄러운 듯하다. 그러나 정치인 개인들에 대한 이슈는 넘쳐나는 반면, 청치나 정책에 대한 관심은 드문 듯하고. 그러다 보니,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관련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법조인으로 혹은 학자로 일하다 어느 순간 하루 아침에 정치인으로 변모가 가능한 사회. 이제는 한국도 정치를 업으로 수십 년간 바닥에서부터 기초를 닦고 쌓으며 성장해온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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