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정치적 수난 닮아
李, 5개의 재판 받는 처지
김대중과 확연히 다른 형국
법원 판결 첫 관문서 제동
'플랜 B' 마련이 책임윤리
논설위원 |
법의 심판은 때론 오묘하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법원 판결은 예상보다 엄혹했다. 이 대표의 정치생명이 다시 변곡점을 맞았다. 대권가도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한다. 평소 '김대중의 길'을 강조해 온 이재명의 정치여정은 어떻게 귀결될까. DJ는 질곡의 시공(時空)을 헤치고 기어이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이재명은 김대중의 길을 갈 수 있을까.
# 닮은 점='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오롯이 녹아있는 아포리즘이다. 그의 실용주의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때 용공주의자로 지목됐던 DJ는 사실은 현실주의자이자 융합의 대가다. 정치전략과 경제정책이 그랬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했고 진보와 보수를 믹싱했다. 1997년 대선 때의 'DJP 연합'은 덧셈정치의 전범(典範)으로 회자된다.
이재명의 '먹사니즘'은 DJ의 실사구시와 은근히 닮았다. 우클릭 행보도 눈에 띈다. 여당의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손을 들어주더니 "성장이 곧 복지"라고도 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원전 예산안을 수용할 뜻을 비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1야당 대표 연임도 공통분모다. 이재명의 민주당 대표 연임은 1995~2000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직을 거푸 맡은 DJ 이후 처음이다. 정치적 수난과 야권의 1강 대선 후보라는 점도 닮은꼴이다.
# 다른 점=김대중은 호남의 반대여론과 '사쿠라' 역풍을 딛고 'DJP 연합'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당내 비판에 귀를 열었으며, '개딸' 같은 극성 팬덤도 없었다. 공화적 가치를 존중한 의회민주주의자였다. '김대중' 이름 그 자체로 리더십이 작동하고 카리스마가 분출했다.
지금은 DJ 때와는 살짝 다른 이재명 일극체제다. 친명 단일대오, 일사불란의 모습엔 독재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이재명 호위무사의 아부와 충성경쟁은 그로테스크하다. "신의 사제"에 빗대거나 "비명계 움직이면 죽이겠다"는 극언까지 나왔다. "3김(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에 힘이 실리면 이재명 일극체제 극복이 가능하다"는 야권 일각의 주장엔 공명(共鳴)이 없다. 사법리스크에 대비한 '플랜 B'가 필요할 텐데 오직 '이재명 몰빵'이다. 투자의 ABC '포트폴리오'는 민주당엔 없는 단어가 돼버렸다. 이 대표 독주는 양날의 칼이다. 대권을 추동할 엔진이지만, 중도층 소구력과 사법리스크 대응엔 악재다. 5개의 재판에 휘말려 있는 처지는 이재명의 아킬레스건이다. DJ와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 이재명의 과제=이 대표 앞에 놓인 과제는 명징하다. '개딸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이는 외연 확장에도 필수적이다. 이념과 정책의 우클릭만으로는 부족하다. 당내 민주화가 필요하다. '따따부따'해야 진정한 민주정당이다.
1919년 뮌헨에서의 대중강연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가 거론한 정치인의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학계의 오랜 화두다. 베버는 신념만 앞세운 나쁜 결과를 경계하며 책임윤리에 더 무게를 실었다. 작금의 우리 정치는 신념윤리만 팽배하는 분위기다. 순수한 의도라도 파국적 결말이면 그 폐해는 크다. 결과까지 책임지는 게 정치인의 온당한 자세다. 법원 판결은 이재명 대표와 진보의 명운을 가름할 분수령이다. 한데 첫 관문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 책임윤리를 곱씹어야 할 시간이 왔다. 민주당의 '플랜 B' 마련도 책임윤리의 범주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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