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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손편지는 타임캡슐에서

2024-12-10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상자를 발견했다. 속에 든 것은 20~30년 전에 받은 편지들이다. 여고 시절 친구가 삐뚜름한 글씨로 원고지에 꾹꾹 적어 보낸 하소연이다.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는 찬란한 서른의 봄날이 있다. 잿빛 하늘과 바람도 들어 있다. 몸도 마음도 환절기인 채로 흘려보내는 일상이 있다. 깜깜한 밤에 앓는 치통 같은 삶도 있다. 내 아이와 다녀오라고 보내준 인형극 '옹당골 옹고집' 입장권도 들어 있다. 내가 그 인형극을 보러 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나도 답장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예쁜 편지지를 골라 나의 계절과 까닭 없는 눈물도 보냈으리라.

주변 아파트들과 도로가 다투어 성탄과 새해를 축하하는 등불을 밝히고 있다. 학창 시절, 이맘 때에는 국군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썼었다. 용케도 답장을 받는 친구를 부러워하며 편지를 돌려가며 읽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끼리 모여 성탄 축하 카드를 만들었다. 서점이나 문구사에 들러 받을 사람 맞춤형 연하장을 고르기도 했다. 연말연시는 그렇게 달뜬 시간이었다.

근래 들어 종이로 된 편지나 연하장을 주고받은 기억이 가뭇하다. 그 자리를 각양각색의 SNS가 대신한다. 다른 이에게 온 무수한 안녕들을 또 다른 이에게 무한히 뿌려댈 수도 있다. 글로벌하고 스피디한 시대에 폭탄처럼 쏟아지는 맞춤형 산물이다. 그렇게라도 안부를 전하며 인사를 했다는 위안으로 마음이 편해진다면 다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쪽 어깨가 점점 더 허전해지는 느낌이다.

영양이 고향인 조지훈 시인이 경주의 박목월 시인을 방문하였다가 고향에 돌아가 '완화삼(玩花衫)'이라는 시를 편지로 보낸다. '잘 지내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네'가 '완화삼'이 되었다. 이 시에는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에 목월도 비슷한 운을 넣어 답시를 보낸다. 그 시가 바로 '나그네'이다. '찾아줘서 고마웠네. 또 만나세'라는 말이 '나그네'가 되었을 터다. 감히 모방하지 못할 시인들의 풍류다.

겨울이지만 아직도 노란 은행잎을 달고 있는 양지로를 지나며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로 시작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친구를 떠올리며 희끗한 이야기들을 써 보내고 싶은 생각에 다다른다. 편지지를 사러 문구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장년을 넘어가는 내 삶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우리들의 추억을 한 자 한 자 적어서 보내려 한다. 친구가 읽고 서랍에 넣어둔다면 먼 훗날 그의 아이들에 의해 타임캡슐 안에서나 발견될지도 모를 편지를 써 보려고.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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