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혁동 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이곳 조선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고통이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그저 경계와 의심과 천대가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상단의 글을 일부 인용한 것은 새해를 맞이해 서재에 쌓여만 가는 책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펼쳐진 책갈피에서 눈에 띈 문장-1885년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의 기도문-이 살아나 책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었다. 140년 전 1885년 당시 조선의 모습과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는 순간, 서재 정리를 일단 멈추고 시간이 엉킨 채 감겨오는 생각의 실타래를 잠시 정리해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강행된 일 중에 대내적으론 무리한 경복궁 중건의 후유증으로 인한 경제 파탄과 대외적으론 쇄국정책의 일환인 천주교 탄압과 선교사 배척이 서양문물의 전래를 막았기 때문에 서양 귀신이라 손가락질받고 있던 선교사의 눈에는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사람들의 경계와 의심과 천대가 가득한 조선이 절망의 땅으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500년 조선 역사의 표징인 당쟁은 서로를 비난하며 음모를 꾸미는 일이 허다했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암살과 사형 등의 극단적 방법까지 자행하며 조선 사회를 불안과 혼란에 몰아넣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새로운 위기에 봉착한 조선은 침략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1910년 일본에 의한 강제 병합으로 조선의 당파가 그 모습을 감추었으니 작금의 극단적 이념 갈등과 당리당략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지금은 풍요롭고 부유한 자유대한민국! 산마다 울창하게 나무가 자라나는 금수강산! 오대양 육대주에 우뚝 선 K-문화, K-콘텐츠, K-브랜드로 인한 감사가 넘쳐나도 감사를 모르며, 행복이 손짓해도 행복을 모르고 이념논쟁의 늪에 빠진 이 땅의 사람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140년 전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처럼 이 땅이 머지않아 축복의 땅이 되리라 믿는다. "주여! 오직 우리의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여혁동 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