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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후천성 내란인식 결핍증후군

2025-02-05

[영남시론] 후천성 내란인식 결핍증후군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서부지법에 시민들이 쳐들어가 박살 낸 거 보니까 속이 다 시원터라. 공수처도, 헌법재판소도 그렇게 하면 좋겠는데, 대구시민은 대체 뭐하노. 옛날 4·19와 광주사태처럼 시민들이 일어나야 나라가 제대로 되는 기라."

얼마 전 앞산을 오르다가 등산객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순간 아연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벌어진 법원 난입사태의 주체를 4·19, 5·18민주화운동 주체와 같은 시민으로 본 것도 맥락이 안 맞는데, 법을 집행하고 헌법을 수호하는 공수처와 헌재마저 폭력으로 파괴해야 한다는 선동적 언사가 섬뜩했다.

12·3계엄사태가 두 달이 지나고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란 죄목으로 구속된 마당에 우리는 아직도 이 같은 '심리적 내전' 상태를 겪고 있다. 이는 국민을 갈라쳐서 "반국가 세력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공언한 윤석열 대통령과 이를 비판 없이 추종하는 극단적 세력 탓이다. 특히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은 더 가관이다. 엇나간 극우 기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이 반공사상, 가짜뉴스와 합세해 혐중, 숭미, 안티페미니즘과 전체주의적 사고를 부추기는 것이다. 심지어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하는 데선 어안이 벙벙해진다. 국회에서 헌재로 넘어간 대통령 '탄핵의 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향후 벌어질 헌재의 탄핵 여부 결정은 물론 조기 대선의 결과도 부정하고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보수 개신교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전광훈류와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게 민주공화국이 사는 길이다.

얼마 전 개봉한 할리우드영화 'Civil War(내전-분열의 시대)'를 봤다. 전 세계 30여 개국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한 영화인데,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 영화는 2021년 1월6일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근거 없는 부정선거를 빌미로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폭력 행위를 일으킨 시위대에 착안해 제작됐다. 21세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 파시스트 대통령의 출현으로 160년 전 남북전쟁 같은 내전이 벌어져 지방정부끼리 테러와 학살을 자행한다는 게 줄거리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작금 한국의 정치 상황과 맞닿아 있다. 미국처럼 한국도 개인의 총기 소유가 자유롭다면 어땠을까 싶어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겐 6·25 전쟁 전후 벌어진 민간인 학살로 전국에서 100만명 안팎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아픈 역사가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1·6폭동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미국의 민주주의도 배울 게 별로 없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21세기에 계엄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곤 친위쿠데타 주도 세력 외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위난을 자초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는 스스로 짊어질 일이지만, 알지 못해 지은 잘못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퇴행은 오롯이 국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 폐해 중 가장 우려되는 건 '후천성 내란인식 결핍증후군(Acquired rebellion awareness deficiency syndrome)'의 발호다. 반민주, 반헌법, 반시민, 반지성의 폭력적 증상이 버젓이 우리 사회에 일상화돼도 외면하고 거짓과 궤변으로 이를 정당화해도 오불관언이라면 더 이상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박진관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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