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시장 추진 조례에 시의회 수정 가결
시민 1만4천485명 서명 참여해 폐지 청구
시의회 수리…30일 이내 폐지 조례안 내야
대구시의회 제316회 임시회 모습. <대구시의회 제공>
대구시의회 운영위원회가 28일 열린 제316회 임시회에서 시민 1만4천485명의 서명이 담긴 '대구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폐지' 주민조례청구를 수리했다.
이로써 지난해 5월 대구시가 전직 대통령 박정희 기념 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한 관련 규정 마련을 위해 제정한 조례의 존폐 여부는 내년 4월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례 폐지 청구가 수리된 것은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른 요건을 모두 충족했기 때문이다. 운영위는 해당 주민조례청구가 주민조례청구 제외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유효서명 수 기준을 충족한 데다 청구인명부 제출기한을 준수했기에 규정에 따라 "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구시의회 의장은 30일 이내 의장 명의로 '대구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폐지 조례안'을 발의해야 한다.
이번 주민조례청구 수리는 단순한 여론 표명을 넘어 직접민주주의 수단을 통해 의회의 공식 안건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기자회견·1인 시위·집회 등 특정 정책이나 조례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주민조례청구는 법이 정한 요건을 채워야 하고 의회가 정식 절차로 심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여론 표명과는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인물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공론화 부족, 예산 우선순위, 공공 공간의 사용 적절성 등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 의식을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불러온 논란
논란의 발단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에서 달빛철도 축하행사 참석차 광주에 다녀왔다며 "대구로 돌아와보니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이 보이지 않아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구에도 대구를 대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며 "예컨대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동상을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민 의견을 수렴해볼 것"이라고 했다.
이후 지난해 3월11일 홍 시장은 간부회의에서 "4월 중으로 조례를 제정하고,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해 동상을 세우고, 대구도서관 내 공원도 박정희 공원으로 명명해 대형 동상을 설치하라"는 취지로 박정희 기념사업 추진을 지시했다.
이에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과 대구도서관 내 공원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2개소를 건립하는 내용을 담은 '대구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안'을 제출하며 적극적으로 사업 추진에 나섰다. 전체 사업비는 14억5천만원으로 추산됐으며, 동대구역 앞 광장 주변 공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설치에 사용된다.
◆법적 근거 만들어준 대구시의회…"일방적" 비판
대구시의회도 홍 시장의 구상에 발을 맞췄다. 지난해 5월2일 열린 제308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재석 32명 중 찬성 30명, 반대 1명, 기권 1명으로 조례안을 수정 가결했다.
조례안이 통과됨에 따라 대구시는 예산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기념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하지만 조례 제정 과정은 처음부터 적지 않은 반발을 불렀다. 제정 당시 여론조사나 공청회 등 시민 의견 수렴 과정이 생략되면서 '일방적 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시의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긴 했다. 조례안이 통과될 경우, 대구시가 추진하는 특정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수 있고, 사업 시행을 위한 기본적인 절차 규정이 미비해 행정 재량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을 둘러싼 기념사업을 여론조사나 공청회 같은 의견 수렴 과정 및 숙의 없이 밀어붙일 경우엔 지역 사회 내 불필요한 사회적·이념적 갈등을 심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그러나 대구시는 모든 정책을 여론조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며, 이 사안 역시 여론조사를 해야 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이 있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신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설치해 심의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공론화 절차를 거치는 장치를 반영했다.
◆시민 주도 '폐지안' 상정… 의회 심의 절차 돌입
조례 제정 한 달 만인 지난해 6월,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즉각 조례 폐지 청구 운동에 나섰다. 이는 단순히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대구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전체의 제도적 근거를 없애겠다는 움직임이었다.
대구시가 동대구역 앞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명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는 와중에도 시민사회는 조례 폐지 청구를 위한 서명운동은 계속됐다. 그 결과, 6개월간 총 1만4천770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 중 유효 서명은 1만4천485명으로, 수리 기준인 1만3천670명을 넘겼다.
1년여의 검증 끝에 청구가 수리됨에 따라, 대구시의회 의장은 30일 이내에 해당 조례 폐지안을 공식 발의해야 한다.
이후 절차는 시의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행정위원회로 넘어간다. 조례 폐지안은 오는 6월 정례회에서 본격적인 심사를 받을 전망이다. 법적 시한에 따라 시의회는 내년 4월 28일까지 본회의 의결을 마쳐야 하며, 한 차례 연장하더라도 2년 이내에는 결론을 내야 한다.
자영업자 이재길(56·동구 신암동)씨는 "동상을 세우는 것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얼마나 납득했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며 "의회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서명으로 시작된 이번 폐지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대구도서관 내 공원 명명 및 동상 건립 사업 등은 법적 근거를 잃고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동대구역 광장에 설치된 동상 및 표지석에 대해서도 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반면, 부결될 경우 집행부의 기념사업은 탄력을 받겠지만, 시민사회와의 물리적 충돌 등 후폭풍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권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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