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50820027020307

영남일보TV

[한男일女 국제결혼 인기]“문화적 차이 이해하고 존중…현해탄 넘은 하나뿐인 짝꿍”

2025-08-20 22:00

결혼 9년차 최창헌·이치하라 시게미 부부 인터뷰

"처음엔 양국 언어 몰라 손짓으로 소통

문화 달라 어려움 겪었지만 대화로 극복"

19일 오전 대구 중구가족센터에서 한남일녀 부부 신랑 최창헌(왼쪽)과 신부 이치하라 시게미가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19일 오전 대구 중구가족센터에서 한남일녀 부부 신랑 최창헌(왼쪽)과 신부 이치하라 시게미가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19일 오전 대구 중구가족센터에서 한남일녀 부부 신랑 최창헌(왼쪽)과 신부 이치하라 시게미가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19일 오전 대구 중구가족센터에서 한남일녀 부부 신랑 최창헌(왼쪽)과 신부 이치하라 시게미가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이불을 개는 방법부터 찌개를 한가운데 놓고 함께 먹는 것까지, 모든 게 달라 처음엔 싸우기도 많이 했죠."


올해로 결혼 9년차를 맞은 한국인 남편 최창헌(52)씨와 일본인 아내 이치하라 시게미(59·규슈 사가현 출신)씨는 '소문난 잉꼬부부'다. 2016년 9월 '백년가약'을 맺은 뒤 대구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8년째. 보금자리는 중구 남산동에 있다. 신혼 초엔 서로 낯선 생활문화에 적응하느라 부딪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들의 국경을 넘은 사랑은 단단했다. 이치하라씨는 '여기는 한국이지, 일본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가슴에 새긴 채, 최씨의 의중을 항상 존중하고 이해했다. 최씨도 이치하라씨를 '나만을 바라보고, 한국에 온 하나뿐인 짝꿍'으로 인식한다. 그래서다. 아내를 보살피는 데 사력을 다한다. 두 사람은 역사 문제와 같은 민감한 주제조차 먼저 꺼내지 않는다. 서로를 배려·존중하는 이들 부부만의 방식이다.


이치하라씨는 "한국에선 가족끼리 집에서 옷차림을 편하게 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일본에선 부부와 자식 사이에도 일정한 격식을 지키는 분위기라 처음엔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억센 대구 사투리까지 더해져 가족들이 평상시 대화하는 모습조차 싸우는 것처럼 들려 무척 당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문화 차이를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데 공을 들였다. 나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고, 남편이 옆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에 지금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씨도 "언어와 생활 습관의 차이가 작은 다툼으로 이어지곤 했지만, 서로 믿음이 굳건하다 보니 '애정 전선'엔 항상 파란불만 켜졌다"며 "나 하나 믿고 한국에 온 사람인데 더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다보니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만난 지 6개월만에 결혼한 이들 '한남일녀'의 인연은 2016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씨는 이혼 후 홀로 다섯살 아들과 중학교 2학년 딸을 키우며 재혼을 고민 중이었다. 때마침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남동생의 소개로 이치하라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일본어를 단 한마디 못하던 최씨와 한국어를 전혀 몰랐던 이치하라씨.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를 찾고 싶다'는 일념으로 만남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선 손짓으로만 대화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이면 내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단다.


최씨는 "일본에서 처음 만난 뒤 메신저로 꾸준히 연락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결혼 얘기가 오갔고, 반년 만에 혼인 신고까지 했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당시 미혼이었던 이치하라씨는 "부모님이 한국인 남편과의 언어 장벽을 많이 걱정했지만, 내가 '저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다'고 적극 설득했다"며 "결국 '네가 어디에서든 행복하다면 좋다'며 부모님이 허락했다"고 회상했다.


최씨 아이들도 이치하라씨를 새 가족으로 맞이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당시 다섯 살이던 아들은 이치하라씨를 보자마자 "엄마"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운 중학교 2학년 딸도 "오카상(お母さん·어머니)"이라고 부르며 환영했다. 이치하라씨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최씨는 "두 아이 모두 우리 관계를 존중해주고 배려해줘서 지금까지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달 2일엔 잊지 못할 순간이 찾아왔다. 혼인신고만 하고 살던 이들이 뒤늦게 전통혼례를 올린 것. 중구가족센터가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다문화 부부를 위한 웨딩 행사(대봉동 웨딩거리 상인회)에 두 사람을 연계해 준 덕분이다. 한복과 메이크업, 웨딩 촬영까지 마친 두 사람은 전통 예법에 따라 부부의 인연을 새롭게 다졌다. 최씨는 "결혼식을 못 올린 게 늘 아쉬웠는데, 늦게나마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이치하라씨는 "한국식 전통 혼례를 직접 경험한 그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나다라'부터 한국말을 배우기 시작한 이치하라씨는 어느새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을 만큼 한국어에 익숙해졌다. 흘러간 시간만큼, 그가 체감하는 한일 관계도 훨씬 가까워졌다고 인식했다. 이치하라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광복절엔 가급적 외출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들었다. 2019년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 논란 후 불붙은 '노재팬(No Japan)' 운동 당시엔 식당에서 포스터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요즘 일본에 가보면 한국 관광객이 너무 많아 여기가 한국인가 착각할 때도 있다. 양국 관계가 훨씬 좋아졌다는 걸 실감한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 흐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자 이미지

조윤화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