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전국 최초 ‘남성 난임 시술’ 지원
서울·경기·전남 수억 투입…대구경북은 여전히 소수만 혜택
일선 한의사 “난임은 개인 아닌 공동체 문제…정부가 적극 나서야”
대구시도 확대 필요성 공감하지만…‘재정 한계’ 해명만 반복”

최근 5년간 대구시 난임 부부 한의 지원사업 예산 현황.

2024년 전국 난임 부부 한의 지원사업 예산 현황.

대구 한 한의원에서 의료진이 난임 여성 환자에게 한방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영남일보 독자 제공>
최근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로 인식되는 가운데, 대구경북지역 한의 난임 치료 정책이 수도권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를 비롯한 주요 지자체들이 수억원대 예산을 투입해 난임 부부 지원을 확대하는 것과 달리, 대구경북은 여전히 지원예산이 수천만원 수준에 그쳐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9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지난해 난임 극복 조례를 개정하고, 원인 불명의 난임으로 진단받은 만 45세 이하 여성에게 한약 첩약 비용의 90%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예산만 3억원에 달한다. 경기도는 무려 8억원을 배정해 전국 최대 규모로 난임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전남(3억6천만원), 부산(2억4천만원), 충남(2억2천만원) 등도 앞다퉈 예산을 증액하며 사실상 '난임 부부 유치전'에 뛰어든 상황이다.
반면 대구시는 최근 5년간 한의 난임 지원 예산을 4천500만원 안팎으로만 유지해 왔다. 2022년~2023년 일시적으로 5천700만원까지 늘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2024년과 2025년 모두 4천56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경북도의 경우 지난해 관련 지원 예산이 4천만원에 불과하다. 내년 예산 역시 올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이처럼 예산이 제한되다 보니 사업 규모도 협소한 편이다. 대구시는 해마다 60명 내외 난임 부부에게 한약 4개월분을 전액 지원하는 게 전부다. 예산이 적다 보니 혜택은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신청조차 못 한 난임 부부들이 기회를 잃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커지고 있다.
문제는 대구경북이 이미 저출생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합계출산율은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인구 감소 속도는 더 가파르다. 지방대 붕괴, 청년 인력 부족 등 지역 현안의 뿌리에는 인구 문제라는 공통분모가 자리한다. 전문가들은 "지역 소멸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대구경북이 난임 지원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는 건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외면하는 것과 진배없다"고 꼬집었다.
난임은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남성 난임 진단자는 지난해 10만8천343명으로 2018년(7만8천370명)보다 38.3% 늘었다. 같은 기간 난임 시술을 받은 남성 환자도 5만6천117명→7만4천654명으로 33% 증가했다. 난임 관련 진료비도 2018년 104억원에서 지난해 198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난임을 야기하는 질환을 앓고 있는 남성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호르몬 이상으로 정자 형성과 성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진료받은 남성은 2018년 1만4천469명에서 지난해 2만9천35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정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음낭정맥류' 환자도 같은 기간 1만2천549명→ 1만7천87명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난임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 난임 증가 추세는 국가 차원의 종합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경북지역 난임 진단자는 1만9명으로 2023년(7천794명)보다 28.4% 증가했다. 경북도의 난임 시술 지원 건수도 같은 기간 5천947건→ 7천273건으로 22.3% 늘었다.
물론 한방 난임 치료의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의료계에선 임신 성공률이 자연임신율과 큰 차이가 없다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수도권과 타 지역 지자체들은 "논란이 있어도 난임 부부에게 선택지를 넓힐 필요가 있어 체감 가능한 지원을 계속 제공하겠다"며 정책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구경북이 현 수준의 소규모 예산만으로 난임 지원 사업을 이어간다면 청년 세대가 체감할 정책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역 일각에선 "저출생 대책에서 난임 지원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과 달리 인구 감소가 곧바로 지역 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지방의 현실을 고려할 때,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정책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대구 달성군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한의사는 "대구경북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실제 지원받는 부부가 극히 제한적"이라며 "난임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만큼, 지방정부가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난임 부부 한의 지원 사업 희망자가 대상자보다 많은 건 사실"이라며 "예산 증액엔 공감하지만, 어려운 재정 상황 탓에 편성을 못하고 있다. 추후 여건이 되면 검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북도는 올 하반기부터 전국 최초로 남성 난임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전국 최고 수준의 난임 지원 정책을 추진해 악화하는 저출생의 반등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특히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난임부부가 난임 시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체외수정 20회와 인공수정 5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7월부터는 의사 소견에 따라 난임부부가 출산당 25회로 제한된 시술 지원을 무제한으로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환경오염과 스트레스 증가 등으로 늘어나 있는 남성 난임자를 대상으로 한 지원도 늘렸다. 난임 진단을 받은 남성에게 전국 최초로 시술비를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한다.
여기에 분만예정일 기준 35세 이상 산모를 대상으로 소득과 관계없이 외래진료와 검사비를 회당 최대 50만원까지 지급하고 있다.

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