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상버스 자동 리프트 고장 문제, 스웨덴은 ‘수동’으로 풀었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저상버스 한 대, 장애편의시설 하나를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목격한 스웨덴 스톡홀름은 대중교통 장비를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고, 웁살라는 도시 공간 설계 자체를 바꾸며 접근성을 높이고 있었다. 두 도시의 사례는 이동권을 단순한 시설 확충이나 기술 도입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정책과 도시 설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함께 동행 르포한 잉겔라 라르손씨가 저상버스에 탑승하는 모습. 스톡홀름 버스엔 수동 리프트가 장착돼 있어 고장 위험이 적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저상버스 자동 리프트 고장? 수동으로 바꾸면 되지!"
스톡홀름 시내운행 버스 저상 리프트는 수동으로
스톡홀름시의회 '접근성과 참여' 프로그램 규정
신규 인프라에도 접근성 보장 요소 철저히 반영
반복되는 저상버스 자동 리프트(경사로) 고장 문제. 이는 대구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구 반대편 스웨덴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다. 스웨덴은 이 문제를 '수동' 방식으로 풀었다.
지난 9일 오전(현지시간) 스톡홀름 지역교통청(SL)에서 만난 엘레오노라 바시와 멜커 라르손 접근성 담당자는 버스 자동 리프트 고장 문제와 관련해 "스웨덴도 아주 많이 겪은 일"이라고 했다. 겨울철, 한국보다도 눈이 훨씬 많이 내리는 스웨덴에선 제설용 모래와 자갈 등이 전동 장치에 끼어 절반 가까이의 자동 리프트가 멈춰 선다는 것.
지난 9일(현지시간) SL 스톡홀름 지역교통청에서 멜커 라르손 접근성 담당자가 스톡홀름의 교통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의외로 해법은 간단했다. 바로 '수동 리프트'가 해결의 실마리였다. 버스 뒷문 바닥에 납작하게 접어뒀다가 필요할 때 펼치는 방식이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고장 위험도 적다. 설치비까지 절감된다.
라르손 담당자는 "수동 리프트의 무게는 열고 닫는 데 힘들지 않지만, 300㎏까지 견딜 수 있는 자재로 만들어져 있다"며 "장애인이 직접 이 장치를 만지긴 쉽지 않겠지만, 버스기사나 동행자들이 충분히 도와줄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버스 뒷문엔 장애인 마크가 그려진 동그란 버튼이 부착돼 있다. 필요시 운전기사를 호출하거나, 타고 내릴 때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SL 스톡홀름 지역교통청 접근성 담당자인 멜커 라르손, 엘레오노라 바시.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스웨덴의 대중교통 접근성은 법적 토대 위에 구축돼 있다. UN 장애인권리협약(UNCRPD), EU 접근성법과 교통 관련 지침, 스웨덴 차별금지법 등이 모두 준수 대상이다. 바시 담당자는 "접근성 가이드라인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며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어린이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
교통청은 지난 10여 년간 가장 큰 변화로 '차량의 저상화'를 꼽았다. 계단식 구조였던 버스와 열차 차량 등이 플랫폼과 같은 높이의 저상 구조로 전환돼, 승·하차 시 단차가 크게 줄었다는 것.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의 국제 규격 표준화도 큰 역할을 했다. 라르손 담당자는 "스웨덴은 인구가 적은 시장이라 버스 제조업체에 독자적 요구를 관철하기 어렵다"며 "우리는 다른 나라들과 거의 비슷한 조건을 내세울 수밖에 없고, 국제표준을 따라야 한다. 다만, 유럽 공통 기준을 따르면서도 스웨덴만의 변형 방식이 일부 반영돼 있다"고 했다.
스톡홀름의 '수동 리프트' 해법은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대구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복잡한 전동 장치 대신 직관적이고 고장률이 낮은 수동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예산 절감은 물론 실질적인 이동권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스톡홀름의 사례는 '기술적 첨단화'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 2023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현황을 살펴보면, 대구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46.5%다. 시내버스 1천566대 중 728대가 저상버스다. 도입률은 서울(66.7%)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그러나 이런 '숫자'가 장애인이 실제로 느끼는 이동 환경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저상버스를 한 번도 타 본 적 없다"는 지역 장애인의 증언이 이어진다. 이동권 본질까지 다가서지 못한 해결책 때문인데, 이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이 바로 리프트의 잦은 고장 문제다. 리프트가 정상 작동된다고 해도 펼치는 동안 다른 승객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지난 7월 취재진과 함께 출퇴근길을 동행하며 대구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실태를 점검했던 휠체어 이용자 송두용씨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당시 송씨는 장애인의 버스 이용 환경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진과 함께 처음으로 저상버스 탑승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류장 앞 공간이 좁아 버스가 인도에 바짝 붙어 정차하기 어려웠고, 리프트를 펼칠 공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버스가 인도에 붙었지만 이번에는 리프트가 고장 난 상태여서 버스기사가 송씨의 휠체어를 들어올려 버스에 태워야 했다.
하지만 대구의 개선 속도는 더디다. 대구시 버스운영팀장은 "정기적으로 저상버스 리프트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며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미 대부분의 저상버스가 자동 리프트를 장착한 상태여서 이를 수동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제도적으로는 이미 개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국토교통부는 2018년 법률 개정을 통해 저상버스 휠체어 승강 설비를 자동식뿐 아니라 수동 경사판으로도 설치할 수 있도록 기준을 변경했다. '저상버스 표준모델에 관한 기준'상 경사판의 정의는 '교통약자의 승하차를 용이하기 위해 버스와 도로를 연결시켜 주는 자동식 발판'이었으나, 이제는 '자동식' 세 글자를 뺀 '발판'이다.
스톡홀름 시의회에서 채택된 '접근성과 참여 프로그램(2024-2029)' .<스톡홀름시 제공>
스톡홀름 공무원들이 시내에서 휠체어를 타면서 장애인의 시각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스톡홀름시 제공>
한편 수도 스톡홀름은 현재 30㎞ 구간에 18개 신규 지하철 역사를 짓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반적인 인프라 확충 사업이지만, 모든 역사는 접근성 지침을 반드시 충족하도록 설계된다. 담당자들은 "출입구 위치부터 이용 편의까지 도시와 협력해 논의한다"며 "새로 짓는 역사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고 했다.
스톡홀름 도시 차원의 종합 정책도 눈에 띈다. 2024년 2월 스톡홀름 시의회에서 채택된 '접근성과 참여 프로그램(2024년~2029년)'은 장애인의 이동, 주거, 정보·통신, 건강, 문화·여가, 민주주의 참여 등 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특히 "장애가 있는 이들은 스톡홀름의 모든 환경, 실내 및 실외에서 이동하고 머무르며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위기 상황에서 동등하게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조항은 도시 정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시는 건축·개보수 시 처음부터 접근성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계획하고 건설해야 한다. 대중교통뿐 아니라 공공장소·주거·정보 시스템까지 포괄적으로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자체적으로 장애 체험 교육을 벌이면서 장애인의 시각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 휠체어를 타거나, 눈을 가리고 도심을 다니며 장애물을 발견하는 방식의 훈련이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형성하는 방편이 되고 있다.
◆ 경산과 닮은 도시, 스웨덴 웁살라의 장애인 이동권 해법
횡단보도 신호 바꾸는 버튼 옆
도로 안내하는 '요철지도' 부착
市 모든 부서 접근성 개선 참여
웁살라 시청 내부에 설치된 보도블럭(왼쪽), 시의회 회의실에 설치된 오픈형 리프트(오른쪽).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40분가량 떨어진 웁살라. 스웨덴에선 네 번째로 큰 도시다. 도심엔 웁살라대학이 자리 잡고 있어 늘 학생과 연구 인력이 많다. 바이킹 시대 유적과 대성당 등 역사문화유산도 풍부하다.
당초 취재진은 대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지방도시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어떻게 보장되는지 살펴보기 위해 웁살라를 스톡홀름 다음 행선지로 택했다. 하지만 실제 규모와 특성은 대구보다 경산에 더 가까웠다.
경산은 전국 최대 대학 도시로, 4년제 대학 7개, 2년제 대학 3개 등 10개의 대학과 134곳의 부설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인구총조사를 보면, 경산의 2024년 평균연령은 43.6세로, 경북 평균(48세), 전국 평균(45.1세)보다 낮다. 대구 수성구와 맞붙어 있어 대구와 생활권을 공유한다는 점에서도 스톡홀름의 '베드타운' 성격을 갖고 있는 웁살라와 공통분모가 있다. 지난해 웁살라 인구는 약 24만8천명으로 경산(26만5천명·지난 8월 말 기준)과 엇비슷하다.
비슷한 조건의 두 도시지만 장애인이 체감하는 이동권 환경은 크게 달랐다.
11일 웁살라 시청의 카디자 알리 교통기획자가 모두를 위해 설계된 공공벤치를 설명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웁살라 시청의 카디자 알리(왼쪽) 교통기획자와 잉그리드 렘브케 폰 셸레 (오른쪽) 교통 모빌리티 부서장이 개선된 도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지난 11일(현지시각) 찾은 웁살라는 장애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시청사에 들어서자마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블록이 바닥 곳곳에 깔려 있었다. 입구엔 손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 점자 안내도가 배치됐다. 2층 높이의 계단식 구조로 조성된 시의회 회의실 안에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오픈형 리프트가 구비돼 있었다. 리프트 입구 바로 옆에 세워진 발언대는 높낮이 조절이 가능해 누구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웁살라시청의 카디자 알리 교통기획자와 잉그리드 렘브케 폰 셸레 교통·모빌리티 부서장은 취재진과 도심을 함께 걸으며 '모두를 위한 설계'가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소개했다. 시각 장애인 보행을 돕는 색상 대비 블록과 단차 없는 보도, 광장 곳곳의 벤치는 누구에게나 접근성이 용이했다.
웁살라 옛 시가지는 돌바닥이 많다. 울퉁불퉁한 바닥은 휠체어 이용자나 노약자에겐 많이 불편하다. 알리 기획자는 "지난해 일부 구간의 돌바닥을 평평한 보도로 교체하고, 보행에 방해가 되는 구조물을 철거했다"고 말했다. 실제 새 보도 위엔 휠체어뿐만 아니라 보행기를 끄는 어르신, 유모차도 쉽게 목격됐다.
횡단보도의 기둥엔 오돌도돌한 형태의 요철 지도가 붙어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횡단보도 신호를 바꾸는 버튼 옆면엔 오돌도돌한 요철 지도가 붙어 있었다. 손끝으로 더듬으면 도로가 어떻게 나뉘어지고, 보행자가 건너야 할 횡단보도의 대략적 구조도 알 수 있었다. 차량 진입통제 구역엔 장애인 택시 등 사전 허가 차량만 들어올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선 운전기사가 알아서 스스로 차체를 낮추고, 보도 쪽에 바짝 붙여서 버스를 정차했다. 렘브케 부서장은 "눈에 보이는 휠체어 이용자가 없어도 승객은 탑승이 어려울 수 있다"며 "차체를 낮추는 건 모두에게 좋은 조치다. 나이에 관계없는 것은 물론이고 누구든지 버스를 오르내리기가 쉬워진다"고 강조했다.
11일 웁살라 시에서 한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와 차체를 낮추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웁살라시의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정책은 눈에 보이는 시설 개선을 넘어, 정보 접근성까지 확장돼 있다. 시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거리별 도면은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조성돼 있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공사나 행사로 접근이 제한되는 구간도 실시간 공지해 누구나 최신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웁살라 시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통 및 접근성 관련 자료물 캡처
웁살라시는 특정 부서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환경·교통 등 거의 모든 부서가 자기 업무 속에 접근성 문제를 포함시킨다. 렘브케 부서장은 "지자체 안에선 이런 문제를 여러 수준에서 다루고 있다. 매년 원하는 일을 추진할 수 있을 만한 일정한 예산이 편성된다"고 말했다. 현재 교통부서엔 12명, 시 전체로는 교통 기획자가 25명이 활동을 하고 있다. 정치권 지원도 적극적이다.
알리 기획자는 "대학도시 특성상 자전거 이용이 활발한데, 자전거와 휠체어, 시각·청각장애인 모두 함께 쓸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게 과제"라며 "거리를 모두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경산 역시 5년 단위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하며 제도적 기반을 다져왔다. 하지만 웁살라와 비교해보면 질적 차이가 명확하다. 도로 구조 개선이나 보행 환경 정비 등 관련 사업과 예산이 대부분 교통 관련 부서에 집중되어 있어 타 부서와의 협업이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웁살라는 '모두를 위한 설계'를 도시 전반에 통합 적용한 반면, 경산을 비롯한 국내 지자체들은 여전히 저상버스 확대와 같은 시설 중심의 양적 접근 또는 법적 기준 충족 수준에 머물러 있다.
11일 오후 웁살라 시청의 카디자 알리(오른쪽) 교통기획자와 잉그리드 렘브케 폰 셸레 (왼쪽) 교통 모빌리티 부서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대구장애인편의증진기술지원센터 장문정 편의증진부장은 "결국 핵심은 인식의 변화"라며 "우리 사회에서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아직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 부장은 "도시 환경을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교통약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의 이용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이 정착되면 유니버설 디자인도 자연스럽게 사회에 정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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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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