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릿쿄대학 캠퍼스 내에 새로 세워진 기념 시비. 석재 받침 위에 설치된 비석에는 시인(또는 관련 인물)의 사진과 생애, 작품 일부가 한국어·일본어로 함께 새겨져 있다. 주변은 나무와 관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용한 추모 공간을 이루고 있다.
시(詩)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한 두 구절로 우리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시가 있다.
"나보기가 역겨워" 도 있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안다.
일제강점기 동안 많은 한국인이 시나 소설도 쓰고, 항일 투쟁도 하다 숨졌지만, 윤동주는 시 하나로 많이 알려진 몇 안되는 한국인중 한명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많은 시를 쓴 것도 아닌데(평생 116수), 한국인 뿐만 아니라 지금도 윤동주를 공부하는 일본인들 모임이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릿쿄 대학에서 한 학기, 교토 도시샤 대학에서 10개월을 각각 다니다가 우리 말로 시를 쓰고 사상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구속돼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해방을 앞둔 28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10월 도쿄 시내 릿쿄대학에서 윤동주 시비가 건립됐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시비가 생긴 이후 두 번째이다. 한국에서 비중있는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300명이 넘는 한일 시민들이 참석해 하루 종일 다채로운 행사를 했다. 필자는 평소 궁금증 때문에 이날 참석했다.
유적답사를 다니면서 이상한 점은 서울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뜰에 안중근을 추모하는 일본인들 모임에서 보낸 매화나무였다. 가나자와를 갔을 땐 일본인들이 성금을 모아 윤봉길 의사 묘지를 조성했다고 일본인이 소개하고 안내를 했다. 자기 나라의 정치인을 죽인 한국인인데 왜 지금 시점에서 추모하고 공부를 하는지 의아했다.
더 궁금한 건 윤동주에 대한 모임이다. 윤동주의 시라면 필자는 기껏해야 우리 교과서에 나오는 몇 수밖에 모른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모임은 3군데에서 운영됐다.윤동주가 대학을 다닌 도쿄, 교토, 그리고 죽음을 맞은 후쿠오카였다. 각 모임 인원은 10여명이었다. 특히 후쿠오카 경우, 매달 모여 시를 읽고 감상하는 모임을 30년 동안 하고 있었다. 시가 총 116수로 알려져 있으니까 전부 외울 수준이었다.
윤동주가 한국에서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고,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한국에서 윤동주를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궁금했는데 윤동주 시를 공부하는 일본인들 모임에서도 시비 제막식에 회원들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행사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싶었다.
소설가 공지영 작가가 참석해 전문가와 대담을 했다. 공지영 작가는 일본 작가와 공동으로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썼다. 이 소설은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양국의 현재 젊은 사람의 사랑을 다뤘는데 그 연결고리로 윤동주 시인을 인용했다. 소설을 준비하면서 윤동주를 모티브로 삼았고 그를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현장 답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 느낀 것을 이야기했다. 공지영 작가도 일본인들이 왜 윤동주에 그렇게 매료됐는지 의문이 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대담을 듣고 필자가 내린 판단이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미안함 때문에 현재 일부 일본인들이 윤동주에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윤동주가 처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희망도 없었고 죽음이 어른거렸다. 전쟁·식민지·감옥 생활 등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윤동주 시 어디에도 과격한 말은 없었다. 원망하는 말도 없었다. 하늘, 바람, 별과 시를 얘기하고 자기 양심의 부끄러움을 얘기했다. 폭력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말, 정신세계에 일본인들이 감동했다고 생각한다.
임재양(임재양외과 원장, 게이오대학교 법정대학 방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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