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아담 마츠키에비치 동상. 프랑스로 망명해 시인이 됐고, 폴란드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장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은 폴란드의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아담 마츠키에비치이다. 프랑스로 망명해 시인이 됐고, 폴란드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폴란드어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폴란드의 시인이라기보다는 19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시인이었다. 연방은 그가 태어나기 전 사라졌으나 그 문화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도 강하게 남아 있었고 그는 연방의 부활을 꿈꾸었다. 이 연방이 다스렸던 땅은 뒤에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이니, 사실 그는 동유럽의 대표 시인이자 혁명가라 할 것이다.
시청사탑으로 불리는 리튜쇼바 탑과 중세 쇼핑몰 수키엔니체. 가운데 동상은 아담 마츠키에비치.
동상 너머로 시계탑 하나가 눈길을 붙들었다. 시청사탑으로 불리는 리튜쇼바 탑이다. 과거 행정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이 광장에 시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14세기에 크라쿠프 시청과 함께 세워진 시계탑인데, 19세기 들어 시청이 철거되면서 탑만 홀로 남게 됐다. 지금의 탑도 초창기 모습은 아니다. 17세기 말에 일어난 화재로 종과 함께 탑의 절반이 사라져 재건한 것이다. 재건 전까지 탑은 100년간 광장에 흉물처럼 방치됐다. 하지만 허물지 않고 보존했다가 1960년대에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며, 탑 안에는 크라쿠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고딕 양식이 돋보이는 탑 내부는 크라쿠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가운데 하나다. 현재는 안전 문제로 내부 전망대를 전부 막아놓았다. 라투슈초바 탑 앞에 놓인 조각은 폴란드의 유명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하는 에로스의 얼굴이다. 조각 안이 비어 있어서 아이들이 놀이터처럼 들락날락한다. 탑과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많다. 작품을 대하고 향유하는 방법이 광장의 예술답게 대중적이고 친근하다.
수키니엔체 내부의 상점. '직물회관'으로 번역되는 수키니엔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이다.
라투쇼바 탑 오른쪽의 건물은 수키엔니체(Sukiennice)이다. '직물회관'으로 번역되는 이곳은 13세기경 중앙시장 광장이 형성될 때부터 크라쿠프와 함께한 역사 깊은 건물로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이 광장이 좁아보이는 것은 이 광장 중앙에 버티고 있는 108m 길이의 이 건물 때문이다. 이름처럼 예전에는 직물을 주로 팔았는데 지금은 수공예품이나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2층에는 18~19세기 폴란드 회화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광장이 경제 중심지로 불리는 것도 이 시장 덕분이다. 과거 해외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은 먼저 이곳에 모였다. 크라쿠프는 향신료와 비단, 가죽을 사들였고, 비엘리치카 소금 광산에서 캐온 소금과 직물, 납 등을 내다 팔았다.
크라쿠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성 보치에하 교회.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다채롭게 섞여 있다.
성 보치에하 교회는 광장 한가운데 있지만 광장의 높고 거대한 구조물 속에서 상대적으로 왜소하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위치나 규모 면에서 얼핏 관광 안내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가 켜켜이 쌓인 지나칠 수 없는 역사 유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로 불리지만 크라쿠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기도 하다.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로마네스크 이전 양식에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다채롭게 섞여 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벽 안에 11세기 후반의 프리로마네스크 벽돌 구조가 잠들어 있는 구조로서, 초기엔 목조 건물로 지어졌고, 당시 교회에서 바벨까지 이어진 도로가 있었다. 크라쿠프 봉기가 일어났을 때 교회는 병원과 보호 시설로 쓰여 많은 부상자를 치료했다. 현재는 위층은 교회, 아래층은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야기엘론스키대. '지동설'로 세상을 뒤흔든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등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광장 주변에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크라쿠프는 곳곳에 책방이 많은 책의 도시이자 체스와프 미워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배출한 '문학의 도시'(2013년 유네스코 지정)이기도 하다. 문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6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야기엘론스키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동설'로 세상을 뒤흔든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등이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1364년 카지미르 3세 대왕에 의해 설립된 중앙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유럽 최초의 대학인 이탈리아 볼로냐대을 본떠 만들었다. 설립 때는 볼로냐대처럼 제너럴 스튜디움(Studium generale)이라 불렸고 교양, 의학, 법학의 세 학부로 구성됐고, 폴란드 최초의 여왕인 야드비가가 사비를 털어 재건하면서 더욱 탄탄해졌다.
야기엘론스키 대학 출신인 코페르니쿠스 동상.
광장 주변으로 야기엘론스키 대학의 칼리지 건물들이 만들어낸 '대학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1364년에 지어진 콜레기움 마이우스(Collegium Maius)이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대학 출신인 코페르니쿠스 전용 전시실도 이곳에 있다.
구글맵에서 야기엘론스키대를 검색하면 나오는 건물은 콜레기움 비트코프스키(Collegium Witkowski)이다. 실제 이 건물은 가장 찾기가 쉬운 곳에 있다. 플란티 공원(Planty Park) 옆인 데다 건물이 크고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어 쉽게 눈에 띈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에 세워졌으며, 물리학자이자 당시 총장이었던 어거스트 비트코브스키(August Witkowsk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대학 부설 성 안나 교회. 교회의 공식 금서로 지정된 논문을 쓴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기념물을 세웠다.
이 대학 부설 성 안나 교회도 빼놓을 수 없다. 폴란드 국민의 90%가 로마 가톨릭을 믿는 만큼 교회나 성당은 폴란드인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대학 안에 교회가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대학의 다양한 행사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교회가 더욱 특별한 것은 당시 교회의 공식 금서로 지정된 논문을 쓴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기념물을 세웠기 때문이다. 교회는 좁은 골목에서도 수려한 외관을 뽐낸다. 이 교회는 2층 구조로 후기 바로크 양식의 큐폴라로 장식된 2개의 탑이 있다. 정문 위에는 성 베드로에 대한 라틴어 비문이 있고, 2층 창문 위에는 마돈나와 어린이를 묘사한 부조가, 측면 입구 위에는 천사의 부조가 있다. 교회 내부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6개의 예배당이 본당을 따라 늘어서 있다. 크라쿠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 건물로 손꼽힌다. 성 안나 대학 교회는 기독교적 세계관과 충돌하는 과학자의 동상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이 도시의 포용성과 진취성을 역설하는 것 같다.
바벨 성 전경. 바벨은 17세기 초까지 왕들이 거처했던 왕궁이자 주교 사저로서,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가 압축돼 있다.
구시가 광장에서 남쪽으로 걷다 보니 웅장한 성이 눈에 들어왔다. 크라쿠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바벨(Wawel)이다. 바벨은 17세기 초까지 왕들이 거처했던 왕궁이자 주교 사저로서, 폴란드의 역사와 문화가 압축되어 있다. 구시가 광장이 행정과 경제의 중심지였다면 이곳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이다. 왕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이곳에서 열렸고, 폴란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인 대부분도 이곳에 묻혀 있다. 한때 유럽 인본주의 중심지로 부상하며 황금기를 누리기도 했다.
제법 길고 가파른 언덕 계단을 한참 오르니 정문이 나타났다. 문을 들어서자 탁 트인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크라쿠프 시내는 물론, 성곽 아래로 흐르는 잔잔한 비스와강과 잘 정돈된 수변공원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성은 왕궁, 정원, 대성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스와 강변의 언덕에 세워진 바벨은 1000년경 크라쿠프 주교에 의해 건설되어 여러 번 증개축됐다. 지금의 모습은 16세기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이 혼합 개조되면서 갖추어진 모습이라고 한다. 특히 바로크 양식의 대성당과 르네상스풍의 지그문트 종탑은 바벨의 대표적 볼거리이다.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비껴간 크라쿠프 구시가지와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바벨 성의 바벨 대성당. 폴란드 왕들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거행됐던 곳이다.
바벨에서 단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은 바벨 대성당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1320년 완공됐고, 폴란드 왕들의 대관식과 장례식이 거행됐던 곳이다. 지하 묘소에는 역대 왕을 비롯하여 성직자, 국민 영웅, 문학가 등 유명인들이 묻혀 있다. 이 성당은 또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사제 서품을 받은 성당이자 첫 미사를 집전한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성당 앞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지그문트 종과 종탑은 성당만큼이나 유명하다. 1520년에 제작된 지그문트 종은 폴란드에서 가장 큰 종으로서, 바벨 대성당의 상징이자 폴란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 몸체 길이만 2.41m에 무게가 12600㎏이나 되며, 종소리는 최대 30㎞까지 뻗어 나간단다. 3m가 넘는 우리의 성덕대왕 신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유럽의 종 가운데서는 압도적 크기를 자랑한다. 종의 추가 빤질빤질하다. 아니나 다를까. 왼손으로 추를 만지면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는 설이 있단다.
바벨성에서 비스와 강변으로 계단을 270여 미터 내려가면 용의 전설이 서려 있는 '용의 동굴'이 있다. 옛날 이 동굴에 살던 포악한 용이 아름다운 소녀들을 유괴해 잡아먹곤 했는데, '크라크'라는 용감한 구두 수선공이 그 용을 물리쳐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크라쿠프라는 지명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란다. 동굴 입구에 불을 뿜는 용의 동상도 세워놓았다. 전설의 의미나 무게에 비해 옹색하고 남루했다. 동서양의 용에 대한 이미지와 인식 차이를 새삼 실감했다. 어쨌든 이방인이 보기에도 살기 좋은 곳 같으니, 그것으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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