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경 시인·대구문인협회 자문위원
지난달 한국낭송문학회(회장 이병훈) 주최로 이육사 기념관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한 줄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작가들'이란 주제로 심훈·윤동주·이상화·한용운·현진건의 작품 낭송회가 열렸다. 프로그램에 이육사의 시 '광야(曠野)'가 있어서 바람 심하게 부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달려갔다. 고등학교 시절 안동의 낙동강 높은 둑에 서서 구국의 초인이라도 되는 양 친구들과 광야를 목 놓아 낭독했던 추억에 젖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중략)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일제 말기 윤동주와 함께 2대 저항시인으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로 2년간 수감되어 본명이 이원록(李源祿)이나 수인번호 264(이육사)에서 따온 필명 이육사(李陸史, 1904~1944)가 된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광야'는 남성적이면서 웅혼한 저항 기질이 넘쳐 청소년 시절에 반하기 좋은 시였다. 필자도 암송하면서 멋을 부리려 했던 것 같다. 특히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은 일제 암흑기에 암울한 상황에서 민족을 구해낼 구원자를 염원하는 상징의 초인이었다.
낭송회가 끝나고 사회자가 객석에도 낭독 기회를 주어 운 좋게도 필자가 그 영광을 얻었다. 처음에는 준비 없는 상태라서 좀 부끄러웠으나 '백마 타고 오는 초인' 부분에서는 머리끝이 쭈뼛 솟는 기분이었다.
초인이라면 니체를 연상한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명제는 젊은 시절 우리를 광분시키고도 남았다. 그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예언자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인간 스스로 기존 도덕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자기 극복의 길을 창조하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간은 혼돈을 껴안고 자기 자신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창조자, 즉 확실성이란 허상 자체를 의심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초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니체가 초인을 불러낸 19세기 후반 서구의 상황과 이육사가 광야의 초인을 불러낸 20세기 중엽 일제의 암흑기를 비교하며, 나는 오늘도 초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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