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미 중 하나인 누른국수. 이나영기자 2nayoung@yeongnam.com
◆ 서문시장이 지켜온 맛의 역사
서문시장에 겨울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칼국수다. 팔팔 끓어오르는 솥에서 뜨거운 김이 퍼지고, 그 사이로 진한 멸치 육수와 다시마·파 향이 은근하게 번지며 겨울 골목을 든든하게 데워준다. 어깨를 맞댄 노점의 상인들은 서로 경쟁하듯 커다란 솥을 앞세워 분주한 손놀림을 이어간다. "국수 금방 나와요, 뜨거우니까 조심해요." 겨울 한낮의 시장은 상인들의 능숙한 손길과 숨결로 한층 더 활기를 띤다. 대구 서문시장의 겨울풍경이다.
대구는 오래전부터 국수 문화가 자리잡은 도시다. 분지 지형 특유의 건조한 기후는 면을 말리기 좋았고, 제면 기술과 공장들이 모이며 국수 산업이 일찍 발달했다. 국수가 생활식으로 자리잡은 배경 속에서 서문시장의 칼국수 역시 오랜시간 지역민들의 한 끼를 책임져 왔다.
누른 국수는 경상도식 칼국수를 의미한다. 밀가루에 콩가루를 소량 섞어 반죽한 뒤 얇게 밀어 가늘게 채 썬다. 요즘은 가게 대다수가 과거의 방식이던 수타 대신 기계면을 사용한다. 그렇다보니 면발보단 각기 다른 육수로 가게마다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개 멸치를 기본으로 한 육수에 다시마, 양파, 무, 대파 등을 넣어 시원한 국물을 우려낸다. 여기에 애호박과 여린 배추를 넣어 끊인 다음 김가루나 지단을 올려 고명으로 올린다.
'누른국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설은 옛 장터에서 면을 넓적하게 '눌러' 말리던 방식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것이다. 삶아낸 면을 채반 위에 얇게 펼쳐 눌러 건조시켜 납작한 모양새가 된 데서 '누른국수'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유래는 콩가루를 반죽에 섞어 누런빛을 내도록 했던 옛 조리법에서 비롯됐다. 일손 많던 장터 국숫집에서는 값싸고 고소한 콩가루로 반죽을 보완하며 누런빛을 자연스럽게 냈는데, 이 누런색이 외려 '구수한 국수'라는 인상을 주며 이름의 기원과 결을 함께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대구 10미 중 하나인 누른국수.이나영기자 2nayoung@yeongnam.com
◆ '꾸밈없는 담백한 맛, 투박한 매력' 대구식 칼국수의 자존심
서문시장에서 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옹가지칼국수'는 이순란(65) 씨와 김봉경(43) 씨 모녀가 함께 꾸려가는 가게다. 서문시장을 자주 찾던 이들은 시장 손님에서 상인으로 나섰고, 지금은 시장을 찾는 단골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게 됐다.
어머니의 추억을 녹여 지은 가게 상호 '옹가지'는 '옹기'의 방언이란다. 김씨는 "예전에 어머니가 누른국수를 집에서 많이 해드셨대요. 한번 해드실때마다 국수 면을 옹기 위에 수북이 쌓아놓으셨는데 그 잔상이 추억으로 남아있어 이름을 옹가지라 지으셨어요."
대구 사람들이 특히 칼국수를 즐기는 이유는 뭘까. 김씨는 "대구사람들은 급한 성격 때문에 빨리 나오는 음식을 선호해요. 칼국수는 내어주기도, 먹기도 편한 음식이죠. 빠르게 후루룩, 든든한 한끼를 책임지기에 국수만한 것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새우로 감칠맛은 높이고 고노리로 비린내를 잡는게 옹가지만의 육수 비결이란다. 칼국수의 어느새 세대 구분없이 모두가 자주 찾는 음식이 됐다. MZ와 외국인 관광객도 폭넓게 늘었다. '칼국수의 성지' 서문시장의 몫도 톡톡히 봤다.
정직한 손맛과 투박한 매력이 돋보이는 대구식 칼국수, 누른국수를 찾는 발길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대구 10미 시식단'으로 나선 타지인 서영현씨(왼쪽)와 외국인 크리스티안가 누른국수를 시식하면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나영기자 2nayoung@yeongnam.com
◆ '2인 2맛' 누른국수
'대구 10미 시식단'으로 나선 경기도 출신 직장인 서영현씨, 칠레 출신 외국인 크리스티안씨는 각자의 언어로 맛을 풀어냈다.
영현씨는 먼저 '누른국수' 어원에 대해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는 "누른국수가 잔치국수를 눌렀다고 해서 누른국수라고 표현하는 줄 알았다"며 "보통 국수는 육수맛으로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집은 쫄깃한 면발뿐 아니라 김이랑 잘 어우러지는 고소하고 포근한 맛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또 "처음에는 양념장 없이 슴슴한 맛을 즐기다가, 절반정도 먹었을 때 양념장을 끼얹어 먹으니 감칠맛이 폭발해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티안씨는 시원한 육수에 매료됐다. 그는 "집밥을 먹는 느낌이다. 걸쭉한 국물도 매력적이고 풍미가 좋다"며 "넉넉한 시장인심이 돋보일 정도로 양도 많다. 간단한 면요리이지만 잔치국수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또 "왜 칼국수가 대구의 소울푸드인지 이해가 된다. 먹기 쉽고 전혀 맵지 않아서 누구나 찾을 음식이다"고 말했다.
대구 10미 중 하나인 누른국수.이나영기자 2nayoung@yeongnam.com
◆ 집에서 간편하게 즐기는 누른국수 레시피
1. 육수 끓이기 : 냄비에 물 1.2L를 붓고 멸치·다시마·양파를 넣어 15분간 끓인 뒤 다시마는 먼저 건지고 멸치는 체에 걸러 육수로 사용한다.
2. 채소 넣기 : 애호박과 대파를 넣고 3~4분 정도 더 끓입니다. 간 마늘 1작은술로 풍미를 살린다.
3. 면 삶기: 칼국수 면은 헹궈서 전분기를 빼고 육수에 넣어 4~5분 끓인다. 면이 퍼지지 않도록 중간에 저어준다.
4. 간 맞추기 : 국간장으로 기본 간을 하고, 마지막에 소금으로 입맛 맞춰 조절하면 깔끔해진다.
팁 : 양파가 들어가면 자연스러운 단맛이 나고, 멸치는 깊은 감칠맛을 만듭니다.
다시마는 7~10분 후 건져야 쓴맛이 안 나요.
서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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