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세운 고아원에서 보낸 유년기
아버지의 길 이어받아 '남 돕는 삶' 선택
봉사현장 지킨 이들 덕분에 80주년 맞아"
23일 강영신 아시아복지재단 이사장이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단 창립 80주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23일 오후 대구 동구 아시아복지재단에서 열린 '80주년 기념 휘호 제막식'에서 강영신 아시아복지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제막을 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국가가 복지의 기본 틀을 세운다면, 시민은 그 틀의 빈틈을 메우며 사회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23일 대구 동구 덕곡동에 위치한 <사>아시아복지재단(이하 재단)의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강영신(77) 재단 이사장은 '복지' 울타리 안에서 시민 참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시민연대와 실천으로 메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재단 창립 80주년을 맞은 소회에 대해 "러·일전쟁과 6·25전쟁 고아를 돌보는 일에서 출발한 복지 활동이 지금은 장애인과 아동·청소년, 노인복지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됐다"며 "재단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매일같이 복지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라고 말했다.
지금의 재단이 있기까진 스토리를 알려면 과거로 한창 거슬러 올라간다. 강 이사장의 부친 강만승 목사와 모친 최귀희 권사는 1945년 8월15일 함경북도 청진시에 있는 동수남교회에 '아세아고아원'을 설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러·일전쟁 여파로 생긴 고아 133명을 돌보기 위해서다. 6·25전쟁 이후 이 고아원은 대구로 이전해 명칭을 '자유원'으로 바꿨다. 50년이 지난 2000년부터는 '아시아복지재단'이란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됐다.
그는 "1971년 한국사회사업대학(대구대 전신)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뒤 '자유원'에서 지도교사로 일하며 사회복지 현장에 첫 발을 내디뎠다. 주로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생활을 보살피는 일을 했다"며 "처음에는 부모님의 뜻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중엔 일이 저를 바꿔 놓더라. 남을 돕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재단의 성장과 변화 과정에서 '복지 역할론' 또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에 대해 주목했다. 그는 "처음부터 어떤 목적 의식을 갖고 재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복지기관의 역할을 하나씩 맡아오다 보니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며 "시대가 바뀌면 복지시설의 기능도 바뀌어야 한다. 아시아복지재단이란 이름을 달고 난 후부턴 장애인복지시설과 특수학교, 지역사회복지관 등 모두 28개의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 보호와 재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 행사엔 지역사회 주민과 후원자, 재단 임직원 및 산하시설 종사자, 내빈 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 김태운 대구시 보건복지국장은 축사를 통해 "아시아복지재단은 지난 80년간 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 사회복지 현장에서 활동하며 지역 복지 발전에 기여해왔다. 대구시도 앞으로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긍지를 갖고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처우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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