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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약속, 이번 만큼은 믿고 싶어요”

2025-12-30 19:29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태호씨 인터뷰

"가습기살균제 피해 '국가 책임' 전환 속 실제 이행이 관건이다"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확정한 가운데 30일 이태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하루속히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확정한 가운데 30일 이태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하루속히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수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이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한 일이 오히려 가족을 그렇게 아프게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30일 영남일보와 만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이태호(69·가습기살균제 피해권익보호회 대표)씨는 가족만 생각하면 늘 미안하다며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2003년 옥시레킷벤키저 등에서 제조한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해 가족이 수년간 사용하게 했던 일를 자책한 것이다.


그는 2011년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세상에 알려져 정부가 제품 강제 수거와 함께 사용 중단을 권고하기 직전까지 사용했다고 했다. 이씨는 "가습기는 물과 직접 닿는 제품이라 세균이 번지기 쉬운데, 살균제를 물에 타면 세균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고, 광고에선 '아이들에게도 안심'이라고 하니 나로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가습기 사용 후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 갑자기 기침이 심해졌다. 그땐 원인을 전혀 몰랐다. 단순히 폐 기능이 약하다고만 생각했다. 지금도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해소하지 못한 채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마주하며 일상을 보낸다"고 가슴을 쳤다.


가족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는 부친과 아내였다. 가정주부였던 아내와 외부 활동이 거의 없던 부친이 가습기살균제에 주로 노출된 것이다. 2011년 부친은 호흡기 질환 영향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내는 폐렴으로 고생하다 8년 전 폐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씨는 "나 자신도 기관지확장증과 폐섬유화 진단을 받았지만, 내 가족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며 "병원 가기를 꺼리던 부친에게 약국 약만 사다 드렸다. 억지로라도 병원에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너무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는 특히 아내에게 몹쓸 짓을 했다며 '천추의 한'이 된다고 했다. 아내의 건강을 좋아지게 한답시고 가습기에 살균제를 넣고 수증기가 코에 바로 닿도록 얼굴 가까이에 놓아 줬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공론화한 후 피해자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연도 털어놨다. 부친은 병원 진료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피해자 지위를 받지 못했다. 아내는 2018년 피해 인정 범위가 폐렴까지 확대되면서, 2020년에서야 피해자로 인정됐다. 이씨는 폐 기능이 피해 인정 기준에 못 미쳐 아직까지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앞서 정부 관계자가 집에 찾아와 피해자 인정 조사를 했다. 당시 가족 구성원들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받았다"면서도 "다만 피해 대상자로 확정되기까진 제약이 많았다. 노출 사실이 인정돼도 피해 기준이 적합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나조차도 2019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피해자 인정을 신청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10년간 이씨는 오롯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국회 및 관련 기관별 간담회는 물론, 각종 언론사 앞에서 피해자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열심히 전했다. 이씨는 "가해 기업 관계자들도 자사 제품을 직접 써 보면 이 사태의 무게를 알 것"이라며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한 가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참사다. 그간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심리 상담도 수차례 받았지만, 여전히 상처는 치유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24일 정부 역할이 한층 강화된 피해 대책이 마련된 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봤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며 손해배상 책임 대상을 기존 '기업'에서 '기업과 국가'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요양급여·간병비 등에 국한됐던 국가 배상 범위가 위자료와 일실이익(사고가 없었을 경우 얻었을 이익)까지 포함된 점에 대해서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씨는 "정부가 구체적인 배상 책임을 명시하며 이 사태를 '참사'로 규정한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면서도 "과거에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피해자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이번만큼은 간절히 믿고 싶다. 이번 대책이 실제로 어디까지 이행될지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8천35명이며, 이 중 5천942명이 피해자로 인정됐다. 대구에선 신청자 362명 중 264명이, 경북에선 신청자 306명 중 218명이 각각 피해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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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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