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봄이라면
◆내가 만약 봄이라면/공영구 지음/문학의 전당/110쪽/1만2천원
1996년 '우리문학', 2003년 '심상'으로 등단한 공영구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내가 만약 봄이라면'이 문학의전당 시인선 395권으로 출간됐다. 이번 시집은 시인이 오랜 시간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함께 있음'의 감각을 사유의 중심에 놓는다. 공영구 시인에게 '함께'란 특정 대상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몸이든 마음이든, 시공간의 동시성을 전제한 열린 관계망 속에서 존재를 긍정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자연과 일상, 가족과 노동, 기억과 시간의 결을 따라 조용히 흘러간다. 개나리, 포도나무, 강가의 돌, 시장의 노파 같은 소박한 대상들이 시 속에서 삶의 중심으로 호출된다. 이는 거창한 상징보다 몸의 직접성과 정신의 사유가 만나는 '사이'를 응시하려는 시인의 오랜 시선에서 비롯된다. 그 '사이'를 읽고 느끼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며, 그 자리에서 독자는 작지만 단단한 행복과 마주하게 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는 자연의 변화와 인간의 생을 겹쳐 바라보는 시편들이 고루 담겼다. '보고 싶은 꽃' '눈물의 맛' '앉은자리' '내가 만약 봄이라면' 등은 평이한 언어 속에 삶의 진실을 눅진하게 배어들게 한다. 특히 노동의 현장에서 체득한 시적 순간들은 공감의 깊이를 더한다. 백인덕 시인은 해설에서 공영구 시인의 '시심'을 시를 심는 태도이자 삶의 자세로 읽어낸다. 그는 "기억에 오래 남고 편하게 읽히는 시, 작가 이름보다 제목이 먼저 떠오르는 시를 향한 그의 바람은 이번 시집에서도 유효하다"고 했다.
거울속의 여자
◆거울속의 여자/유가형 지음/만인사/90쪽/1만2천원
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바라본 일상의 저물녘에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유가형 시인의 새 시집 '거울 속의 여자'는, 한 시인의 삶이 고요히 응축된 성찰의 기록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지나온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마주한 얼굴들을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시도"였다고 말한다. 거울은 자기 성찰의 도구이자 동시에 타인의 얼굴을 비추는 가장 오래된 장치라는 그의 말처럼, 이 시집의 시편들은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과 타인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겹겹이 포개져 있다. '거울 속의 여자'에 수록된 시들은 화려한 수사나 과장된 감정을 경계한 채, 삶의 낮은 자리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독자를 이끈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과 오래된 기억, 스쳐 지나간 얼굴들이 시 속에서 다시 불려 나와, 한 시대를 살아온 인간의 내면 풍경을 잔잔히 비춘다. 그 정직한 응시는 자기 고백을 넘어, 독자 각자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은 이 시집을 두고 "유가형의 시는 정서의 박물관"이라 평한다. "여든의 연륜 위에 아롱졌던 갖가지 정서가 조용한 무늬를 이루며, 1950~60년대의 하얀 시골장터와 메주 익는 황토방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 삶과 어절이 전혀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난다"는 그의 말은, 이 시집이 지닌 정서적 깊이를 정확히 짚어낸다. 오래 살아온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담담함과, 끝내 인간을 놓지 않는 따뜻한 시선이 이 시집 전반을 지탱한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울림으로, 독자에게 삶과 시의 본령을 다시 묻게 한다.
시간의 이끼가 덮인 서랍
◆시간의 이끼가 덮인 서랍/장사현 지음/도서출판 진서/208쪽/ 1만7천원
저자는 경찰공무원 20년 근무 후 20년 동안 문예운동을 하고 있다. 문예지를 발행하면서 창작 교실에서 많은 후진 양성을 해왔다. 그간 창작 이론서 '수필문학 총서'를 비롯하여 많은 저서를 내었고 최근에는 시집 '발표할 수 없는 소설'도 출판한 바 있다. 이번에 출판한 수필집 '시간의 이끼가 덮인 서랍'은 4부로 나누어졌다. 제1부 '우포늪에서 듣는 소리'는 서정과 서사의 조화, 그리고 사색적 감성에서 유로(流露)되는 형상화된 수필이다. 제2부 '하얀 웃음'은 수필론적 수필의 성격으로 수필인의 인성과 자세를 가다듬는 자성(自省)의 표현들이다. 제3부 '소리가 사그라질 때 이어지는 소리'는 가족에 대한 소재로 인포멀 에세이다. 100세가 넘은 어머니와 아내에 관한 글도 눈길을 끈다. 제4부 '각화사 귀부龜趺 앞에서'는 자아를 성찰하는 가운데 외향성을 띤 작품이다. 박양근 문학평론가(부경대 명예교수)는 서평을 통해 "장사현은 문학을 개인의 명예가 아닌 사회적 문화로 이해하며, 여러 문학 단체와 지역 문예운동을 이끌면서도 늘 겸손과 배려로 후배 문인들을 아우르고 문학 공동체의 정신적 토대를 세웠다. '달개비꽃'의 질긴 생명력과 '춘양목'의 굳은 뿌리가 상징하듯, 그의 글에는 인간과 삶을 잇는 다리가 놓여 있으며, 이는 곧 문학을 통한 존재와 인간성의 확장이다. '시간의 이끼가 덮인 서랍'은 단순한 작품집이 아니라, 삶과 문학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낸 미적 서랍으로서, 그의 글 속에서는 인간성과 문학적 깨달음이 동시에 살아 숨 쉰다"고 평했다.
온 가족이 함께 읽는 팬지꽃 마주 보기
◆온 가족이 함께 읽는 팬지꽃 마주 보기/나숙(본명 나해숙) 지음/가꿈/120쪽/1만3천원
길가 어디든 팬지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보는 이의 느낌은 각자 다르다. 스스로 팬지꽃을 정성껏 마주 볼 때는 더 그러하다는 뜻을 담아 마음치유 동시집 '팬지꽃 마주 보기'를 묶었다.
시 작품활동과 건강 면역성과의 깊은 관련성은 보고된 지 오래다. 읽고 쓰는 과정에서 기쁨, 행복, 슬픔에서도 정작 깊은 곳에 도사린 무의식의 알아차림을 자신은 알지 못할 뿐이다. 치유 동시집에는 장이규 화백의 팬지꽃 삽화를 표지로 내세우고 민병도·남학호 화백의 삽화를 함께 수록하였다. 여기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추승인 화가의 그림을 전체에 펼쳐서 읽기만이 아닌 보면서 읊기, 낭독과 노래 부르기, 혼자보단 온 가족 마주 보기 알아차림을 돕고자 하였다.
동시인은 시 읊기를 즐겨하였고 1993년 시낭송 대회에서 큰상을 받으면서 시 쓰기를 좋아하게 되어 2년 뒤 창주문학상, 아동문학평론 신인상을 받게 됨은 낭독 경험과 시 습작과의 연관이라 할 것이다. 64편의 시 가운데 '목련 2월' '소리 오르골'의 반복적 낭독은 좋은 발음을 도왔고 '별 이야기' '솜사탕'은 잊혀짐과의 소통에서 알아차림을 도울 수 있었다. 가족들과의 트라우마 치유에 도움을 준 '잠 안 오는 날 밤' '오늘은 엄마가 울었다'와 '석류'은 신체 건강의 상태를 스스로 살피고 인지하도록 이끌어 준다.
시 작품활동에서의 알아차림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다만 스스로 알아차림을 원할 때 구성원으로서의 알아차림은 이유 없는 슬픔 그 아우성일지라도 스스로 알아차림은 영속성이다.
정리=김형범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