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수 극단 창작플레이 대표
설 연휴가 시작되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시간이다. 나는 본가가 대구라 힘든 귀성 전쟁을 치르지는 않지만, 이때만큼은 공연은 잊고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평일과 주말의 경계 없이 맹목적으로 일하다 보면 늘 가족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설날만큼은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2026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최가온 선수의 영상을 보았다. 17세의 이 소녀는 밀라노도 좋지만 할머니께서 해주신 밥을 먹고 싶다는 인터뷰는 또 다른 화제를 낳기도 했다. 차가운 눈 위에서 뜨거운 승부를 펼친 끝에 최고의 자리에 선 이 소녀에게 할머니의 밥상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긴장으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줄 유일한 안식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에 귀국하여 가족들과 함께 올림픽의 뒷 이야기를 나누며 할머니가 해주신 따뜻한 밥을 먹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나는 유독 떡국을 좋아한다. 굳이 설날이 아니더라도 추운 날이면 자주 떡국을 찾아나선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문득 마음이 허기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냄새를 찾게 된다. 하지만 어느 가게를 가더라도 할머니가 해주신 그 옛날 떡국의 맛은 나지 않는다. 레시피의 차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손주를 위해 오랜 시간 공들인 정성의 차이가 아닐까. 오래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떡국 맛을 더 이상 맛볼 순 없지만 그때의 따뜻함은 아직도 기억 속 한편에 선명히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연극을 시작할 때 할머니는 항상 내가 배는 곪지 않을까 걱정을 하시곤 했다. 이제는 나름대로 제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손주의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테지만 생전에 이런 모습을 직접 보여드리지 못한 아쉬움은 늘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이제는 나의 아들이 나의 어머니, 즉 할머니에게서 내가 어릴 적 느꼈던 할머니의 손맛과 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설날 연휴의 아침, 할머니 옆에서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집어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조금은 다른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따뜻함 만큼은 나와 같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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