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안근희 주임이 복수초 군란지를 가리키고 있다. 권기웅 기자
길 가장자리에 모아둔 눈이 채 녹지 않은 20일 오후 2시 영주 풍기읍 삼가주차장. 불어오는 바람을 통해 살며시 계절의 변화가 느껴졌다. 주차장을 뒤로 하고 비로사로 이어지는 소백산 탐방길로 접어들자 산은 여전히 겨울의 체온을 품고 있었다. 그늘진 사면엔 밤새 얼어붙은 눈이 얇게 눌어붙어 있었고, 낙엽 아래는 '바삭' 소리를 내며 발을 잡아끌었다. 해가 오래 머무는 비로사 둔덕 한쪽, 눈이 녹아 흙이 드러난 자리에 노란빛이 번쩍했다. 복수초였다. 봄이 오기 전에, 가장 먼저 안전한 지점을 찾아 고개를 내민 것이다. 소백산의 계절을 달력보다 먼저 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옆에서 발걸음을 멈춘 안근희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 주임이 꽃을 가리켰다. "지금이 딱 이 아이들(복수초)이 올라오는 시기예요. 눈이 남아 있어도 양지바른 곳은 먼저 움직이거든요". 그는 꽃과 거리를 유지한 채 무릎을 굽혔다.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다가가던 탐방객들이 낙엽을 밟아 주변을 헤집지 않도록, 말보다 먼저 몸으로 '선'을 긋는 듯했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살짝 떨렸다. 겨울이 아직 남아 있다는 신호에 가까웠다. 안 주임은 복수초가 '봄의 전령'으로만 소비되는 걸 경계하는 듯했다. "예쁘니까 찾으러 오시죠. 그런데 예쁜 만큼, 사람 손이 많이 닿습니다. 특히 사진 찍는다고 길 밖으로 한두 발만 나가도 작은 식물들은 바로 영향을 받아요"라고 설명했다.
봅의 전령사, 봄이 오기전 가장 먼저 피어나는 복수초가 비로사 둔덕에 군락지를 이루고 있다. 권기웅 기자
대화는 자연스럽게 '보전'으로 이어졌다. 안 주임은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가 하는 일을 "산이 가진 시간을 지키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야생화 훼손, 불법 채취, 탐방로 주변 식생 훼손 같은 단속 업무뿐 아니라, 훼손지 복원과 서식지 모니터링도 일상이라고 했다. "복수초 같은 이른봄 야생화는 특히 관심이 많아요. 올라오는 시기가 짧고, 딱 그때 사람들이 몰리거든요."
그는 요즘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해마다 개화 시기가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이 있어요. 정확한 건 데이터를 더 봐야 하지만, 겨울이 '한 번에' 끝나지 않고 풀렸다가 다시 얼었다가 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식물들도 타이밍을 조정하는 것 같아요"라며 산의 리듬이 더 예민해졌다고 했다.
미나리아재비과(Ranunculaceae) 복수초속(Adonis) 여러해살이풀인 복수초는 '복(福)·수(壽)'(복과 장수) 뜻을 담은 한자어로도 설명되고, 설련화·얼음새꽃 같은 별칭으로도 전해진다. 눈을 뚫고 봄을 재촉하며 꽃을 피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800m 안팎의 높은 산지에 생육하지만, 비로사가 소백산 해발 500m 지점인 것을 고려하면 산의 식물이 사는 높이가 달라지고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숫자다.
권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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