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에 집중 못하는 아이는‘중추청각 정보처리 기능’ 이상 의심
학습 불안·자신감 부족 등 정서도 영향…스마트폰 중독 조기 치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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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부모나 교사는 공부를 ‘안 해서 못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안 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지금까지 학습에 대한 관심은 더 좋은 학습 환경과 강의, 교재, 학생의 노력 등 외적인 측면에만 치우친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학습 정보를 실어 나르는 두뇌 내적인 측면을 지나치면 공부를 잘할 수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 어떻게 해야 하나?
대구 한 초등학교 2학년생 김모군(8)은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교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하루종일 멍하니 있기 일쑤다. 하지만 수업 중 뒤로 돌아 앉자 혼자 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하는 소리를 다 듣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김군은 매사에 짜증을 내며, 낯선 장소에 데리고 가면 귀를 막는 모습을 보인다.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으면서 어떤 때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는 것도 다 듣는, 이러한 상반되는 증상 때문에 김군은 최근 이비인후과를 찾아 검사를 했다. 하지만 청력에는 이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경우 음성정보가 귀로 들어와서 의식 과정을 거쳐 이해되기까지 필요한 과정을 뜻하는 ‘중추청각 정보처리 기능’의 이상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귀가 자신이 듣고자 하는 소리를 들을 때 주변에서 나오는 불필요한 소음을 무시하거나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증상이 심한 아이는 모든 소리가 다 들리기 때문에 귀가 항상 열려 있게 돼, 꼭 필요한 곳에 ‘선택적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 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따라서 학습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의 약 17%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10명 중 2명 정도는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애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징으로는 △라디오, TV 등을 보고 들을 때 소리를 한껏 낮추거나 높여서 듣는다 △들을 때 집중이 잘 안 되며 주의가 산만하다 △유사한 음성의 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 한다 △지시를 자주 반복해 주어야 한다 △들은 순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말을 할 때 상황에 알맞은 단어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말의 속도가 느리거나 주저주저한다 △놀거나 혼자 있을 때 스스로 중얼거리는 경향이 있다 △소리에 예민하고 낯선 상황을 두려워한다 등이 있다. 위의 10가지 증상 중 3가지 이상에 해당된다면 청취기능 문제로 인해 학습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많다.
◆ 집안환경 등 정서적 측면도 관심 가져야 한다
중학생 최모군(14)은 매사에 흥미가 없고 수동적이다. 어려운 상황이 있으면 피하려고만 한다.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목표가 없는 것 같다. 시험에서는 항상 실수를 한다. 공부하라는 잔소리에 신경질을 부리거나 화를 낸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곧잘 하곤 했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영 신통치 않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길지만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상황을 두고, 부모는 최군의 노력 부족이라며 몰아세운다. 최군은 시험기간이 되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내는 등 날이 선 모습을 보이고, 초조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곤 한다.
감각정보는 감각기관과 뇌간을 거쳐 정서조절센터이자 두뇌의 무의식영역인 ‘변연계’로 전달된다. 변연계에서는 들어온 감각정보에 일종의 ‘정서적인 색깔’을 입히게 된다. 이렇게 채색된 정보는 두뇌의 전두엽으로 전달돼,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변연계의 기능 상태에 따라 ‘정보가 어떻게 채색되느냐’가 긍정적 혹은 부정적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변연계 기능 감소로 정서 상태가 우울하게 채색된 사람은 항상 세상을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처럼 변연계 기능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집안 환경으로는 △결과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경우 △부모의 학업성취도나 기대수준에 비해 자녀의 성취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경우 △형제 중 학업성취도에 따라 다른 대우를 하는 경우 △성적이 나쁜 것을 게으르거나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몰아세울 때 △부모 자신이 학교 다닐 때 환경에 비교해서 공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때 △공부 못하는 데 대해서 늘 미안한 생각이 들게 만들 때 등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항상 과도하게 긴장돼 있거나 마음을 잘 놓지 못한다. 시험 결과에 대해서 미리 두려워하거나 부모에게 반항적이며, 분노심을 갖기 쉽다. 고도의 긴장감 때문에 어떤 수행이나 시험을 망칠 경우, 정서적 외상이 되어 시험을 볼 때마다 실수를 반복하는 ‘시험 불안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정서 기능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공부를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등의 의미와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부모는 아이의 공부량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학습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 부모나 사회에 대한 분노, 자신감 결여 등 정서 기능에 이상이 없는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 조기 예방 특히 중요…중독 증상 눈여겨봐야 한다
‘중독’은 정상적인 일이나 업무, 과제 등을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착하고, 그것을 못하면 분노하거나 다른 일상의 일을 하지 않으려는 현상이다. 쉽게 말해, 중독은 어떤 것에 매달리는 의존 행위다. 그리고 하지 않았을 때 금단 증상이 생긴다.
두뇌의 ‘기저핵’이라는 곳에는 정상적인 보상 신경회로가 있다. 보상 신경회로는 꾸준히 힘든 것을 참고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도록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이란 신경전달 물질이 쏟아진다. 예를 들어 마라톤 선수가 죽을 힘을 다해 결승선에 도착하는 순간의 환희, 고생 끝에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희열, 열심히 공부한 뒤 시험이 끝났을 때 느끼는 기쁨 등이 바로 도파민의 영향이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도파민의 활성도가 부족한 경우, 꾸준히 노력해서 얻는 만족보다 금방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자극적인 일에 집착하게 된다.
특히 요즘 학생들은 대인관계보다 인터넷을 통한 인간관계에 매달리는 중독의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줍음이나 창피감, 모욕감을 지나치게 느끼고 대인관계에서 피해 의식을 잘 느끼거나 남이 자신에게 한 실수를 오래 간직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소아 및 청소년이 흔히 빠질 가능성이 높은 중독 분야는 PC게임, 인터넷 채팅, 스마트폰 등이 대표적이다. 일단 중독 상태에 빠지게 되면 정상적인 각성을 필요로 하는 학습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자극적인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늘 피로하고, 동기 부여가 되지 않거나 낮은 각성 상태가 되기 때문에 학습에는 관심이 없어지게 되고, 두뇌는 점점 비정상적인 생리 상태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중독은 조기예방이 중요하다. 중독 가능성이 큰 성향의 아이라면, 일찍부터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는 행동을 자제하고,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원칙을 분명히 밝혀줘야 할 필요가 있다. 방치된 채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환경을 줄여주고, 자연적인 환경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통한 일에 흥미를 가지게 유도해야 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성적이 내려갈 때 더욱 위험하다. 두뇌 특정 부위의 지나친 활성화나 기능의 감퇴 때문에 생긴 중독은 정상적인 각성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두뇌 훈련 방법이 도움 된다. 중독은 성적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므로 조기에 찾아내 고쳐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도움말=최명철 HB 브레인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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