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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당신과 함께 하고픈 밤·바다·맛

2016-11-11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언젠가 당신과 함께 하고픈 밤·바다·맛
‘국민 버스커’ 장범준이 작곡해 관광객 몰이에 일조한 노래, ‘여수밤바다’를 연상시키는 온갖 불빛이 꿈틀거리는 여수항 야경. 멀리 이순신대교∼돌산도∼지산공원을 오가는 해상케이블카가 보인다. 가운데 보이는 섬은 장군도.

‘저 불빛은 노을이 아니고 은하수다. 저 은하수는 왜 한때 반란·학살·밀수의 땅으로 낙인찍혔던 이 바닷가에 내려앉은 걸까. 아늑한 게 아니라 더없이 아득한 불빛.’ 여수산업단지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처음 보면서 떠올린 단상이다.

저 불빛은 이제 여수 야경투어의 주요 관광상품이다. 이순신광장에서 트럼펫을 부는 손석화씨가 진행하는 올빼미야경투어버스를 타면 여수산단을 둘러볼 수 있다. 영취산 철탑과 LG화학 남문에 위치한 전망대가 산단 야경촬영 포인트. 불빛 속으로 이순신 장군이 남해안에서 밝혔던 봉화(烽火)가 어른거린다. 그 어른거림 끝자락에 1948년 여수와 순천을 ‘곡향(哭鄕)’으로 몰고갔던 여순학살의 총알도 빗발친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놓였던 여수는 이후 전라도도 경상도도 아닌 외딴 유형지(流刑地)로 망각된다.

어둑한 여수를 활짝 펴게 만든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만화가 허영만, 또 한 명은 ‘여수밤바다’를 작곡한 뮤지션 장범준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모두 1천438회 동아일보에 연재된, 푸드스토리텔링 만화의 신지평을 연 ‘식객(食客)’의 만화가 허영만. 그의 고향은 여수다. 고소동 천사벽화골목에 가면 출향 인사인 그를 위한 식객 벽화를 볼 수 있다. 세상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 여순사건이 있은 후 꼭 64년 뒤 여수는 세계박람회로 웅비한다. 당시 20대의 국민가요로 불렸던 여수밤바다는 지난 학살의 혈성(血聲)을 봄날의 새싹처럼 홀가분하게 받아준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비장한 여수에 이렇게 쿨한 노랫소리도 흐를 수 있단 말인가! 이 노래에 매료된 청춘은 약속이나 한 듯 여수의 밤바다, 그 바다를 걷고 싶어 여수로 내려왔다. 그들 상당수는 가난한 버스커. 비싼 회는 언감생심, 그냥 숙취 가득한 속에 ‘이순신짬뽕’이면 족했다. 사정이 괜찮으면 선원동에 있는 중식당 ‘차이펀’의 명물 메뉴인 ‘볶짜면’(짜장면에 볶음밥을 섞은 스타일로 우동과 짜장면을 합친 통영의 ‘우짜’와 비슷한 구성)을 맛있게 먹는다.

장범준의 불빛은 여수항의 것이 아니다. 만성리 해수욕장의 한 모텔 네온사인 불빛이었다. 장범준은 2010년 대학 2학년 무렵 그 해수욕장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틈틈이 버스킹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던 중이었다. 2011년 슈퍼스타K3 때 준우승한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리더 장범준. 그는 이 노래로 국민적 버스커로 어필된다. 여수항에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지고 여수시는 전국 첫 ‘버스킹자유구역’을 정해준다. 내년에는 국제버스킹페스티벌까지 열 모양이다. 분석에 따르면 1년에 1천300만명이 여수를 찾는데, 장범준이 그중 4분의 1을 몰고오는 것 같단다.

돌산신청사 곁에 여장을 풀고 카메라만 들고 나왔다. 자그마한 여수항 복판에 주먹만 하게 앉아 있는 장군도를 휘감은 경관조명은 공작처럼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었다. 멀리 거북선대교 위로 케이블카까지 지나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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