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로드 전남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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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사람들은 활어보다 선어, 선어보다 건어물에 숨어 있는 갯내음을 좋아한다. 연안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수산시장 안에는 일반 전통시장에선 볼 수 없는 여수산 마른 생선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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쏨뱅이매운탕과 함께 최고 안주거리로 사랑받는 말린 서대. |
두말하면 잔소리 돌산 갓김치 명성
1년 4차례 봄동·김치·김장 갓 수확
다른 지역보다 쓴맛·매운맛 덜하고
돌산도만의 알싸하고 톡 쏘는 특징
새콤달콤-매콤-감칠맛 3단계 풍미
서대회+막걸리식초 찰떡궁합 일품
오동도·향일암·금오도 비렁길 구경
10개 섬별 바닷가 걷기 코스도 강추
여수 방문 다음날 아침.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때린다. 운무에 감싸인 여수, 더 숙성돼 보였다. 여수(麗水)가 볼수록 ‘여수(旅愁)’ 같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나그네를 위한 만남의 공간이랄까. 날개를 펼친 나비 같은 지형. 300개가 넘는 섬이 올망졸망 잘 짜여 있다. 화양면은 ‘검지’, 돌산읍은 ‘엄지’ 같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FDA인증 청정해역인 가막만이 좌정하고 있다. 동해의 세찬 해류와 서해의 갯물 가득한 해류가 남해에서 맑음과 흐림을 겨루다가 서로의 기운이 정하게 섞여진 곳이 여수다. 어족자원이 풍부할 수밖에. 사계절 각종 수산물이 넘쳐 난다. 돈도 흘러 넘쳐났다. ‘여수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점인 여수. 이순신 장군의 베이스캠프, 한때 조선 수군의 본거지였다.
1998년 여수시·여천시·여천군 등 3곳이 통합 여수시로 거듭났다. 그동안 목포, 통영 정도가 서·남해안의 해산물 메카가 아닐까 싶었는데 여수에 와서 ‘단견’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수는 대한민국 식도락가들이 좋아하는 메이저급 해산물을 실시간 맛볼 수 있다. 여기서 거래되는 어류 리스트만 50여종. 해초류·패류는 말할 것도 없고 쏨뱅이, 금풍생이, 서대, 간재미, 삼치, 장어, 아귀, 하모, 굴, 꼬막 등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토박이 사이에 갈무리되고 있다.
여수를 먹여 살리는 3인방 섬을 알아두자. 멀리서 보면 꼭 오동잎 같다고 해서 생긴 ‘오동도’, 남해에서 가장 멋진 일출과 국내에서 가장 다양한 자태의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는 ‘향일암’, 청산도와 함께 남해 트레킹의 명소로 급부상한 ‘금오도 비렁길’이다. 봄날이면 전국 최고급 진달래를 보여주는 영취산도 명소가 된다.
여수에 와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있다. 제주 올레길 못지않게 바닷가 걷기 코스가 참 풍부하다는 사실. 10개 섬별 걷기탐방로가 완비돼 있다. 가장 대중적 인기를 끄는 코스는 ‘여수밤바다 코스’. 2시간만 할애하면 해양공원~하멜등대~거북선대교~돌산공원~수산물특화시장~좌수영음식특화거리~이순신광장 코스를 돌 수 있다. 최근 완도, 청산도와 함께 남해안 최고 걷기길로 급부상한 남면 금오도는 5개 코스가 있는데 9시간여 동안 18.5㎞를 품을 수 있다. 이 밖에 거문도 녹산등대 가는 길, 거문도 동백꽃숲길 등은 물론 여수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해상케이블카 출발지가 있는 돌산도의 경우, 둘레에 걸쳐진 4개 구간(6㎞)을 걸을 수 있다.
여수 관광의 핵은 어딜까. 임진왜란 때 삼도수군통제영전라좌수영으로 현존하는 고건축물 중 최대 규모인 국보 304호 진남관이다. 1910년부터 50여년 동안 여수공립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등으로 사용됐다. 거기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중앙동 로터리를 호령하는 이순신동상과 이순신광장이 빼꼼히 보인다. 이 광장은 하절기 버스킹 천국으로 돌변한다. 실제 크기의 거북선도 광장 한 편을 지키고 있다.
◆별난 김치의 대명사…돌산갓
전국에서 10번째로 큰 돌산도는 전국 최고의 갓 생산지로 ‘갓섬’으로 불린다. 여기도 갓, 저기도 갓이다.
돌산갓은 싹이 튼 후 40∼60일이면 다 자라기 때문에 1년에 네 차례 수확한다. 4~5월 갓이 최상품이란다. 봄에는 ‘봄동 갓’, 여름에는 ‘김치 갓’, 겨울에는 ‘김장 갓’으로 나뉜다. 우리가 먹는 돌산갓김치는 대부분 봄에 생산되는 봄동 갓이다. 겨울 갓은 묵히는 것보다 현장에서 양념으로 버무려 먹을 때가 제맛이다.
돌산갓은 일본인들이 돌산읍 우두리 세구지마을을 채소단지로 개발하면서 심었던 갓이 점차 개량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돌산도 중심으로 소비되던 돌산갓은 1984년 12월 돌산대교 개통을 계기로 육지로 반출된 뒤 전국적 명성을 얻는다. 전국적으로 수요가 늘다보니 85년 957t이던 돌산갓 생산량은 30년 만에 30배 이상 늘었다.
청도에 가야 ‘반시’를 볼 수 있듯 기후와 알칼리성 토양 때문에 돌산도에서만 알싸하고 톡 쏘는 갓이 가능하다. 잎이 넓은 데다 잔털도 별로 없고 섬유질까지 부드럽다. 다른 지역 갓에 비해 쓴맛·매운맛이 덜해 더 어필된다. 현재 1천300여명의 농민이 돌산읍과 화양면 등지 336㏊에서 갓을 재배해 연간 1천여억원의 소득을 올린다. 가공·판매하는 업체도 300곳 이상.
갓김치는 6개월에서 1년 가량 저온숙성시켜야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묵은 갓김치를 고등어·돼지고기와 함께 넣어 찌개로 먹어도 좋다. 갓김치 담그는 법은 일반 배추김치와 비슷하다. 파와 홍고추, 마늘, 생강, 멸치액젓, 생새우, 찹쌀풀, 소금 등으로 양념을 만든다. 갓이 88% 정도 차지하도록 안배한다. 여느 김치와 달리 고춧가루 대신에 홍고추를 갈아서 쓰는 게 맛의 포인트.
돌산갓과 함께 여수 대표 들나물이 있다. 거문도 해풍쑥과 금오도 잎방풍.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된 해풍쑥은 거문도 일원 43㏊에서 재배된다. 잎방풍은 전국 생산량의 90% 가량 차지해 특산물로 등록 중이다. 금오도 두포마을에 가면 반드시 방풍전복칼국수를 맛보길. 500년 된 해송 아래 평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칼국수를 먹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 여수맛의 출발 서대회
여수맛의 출발을 상당수 관광객은 봉산동 간장게장백반, 여수한정식 등을 꼽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막걸리식초가 잘 빚어낸 ‘서대회’인 것 같다. 교동시장과 여수수산시장 사이. 서대회무침, 장어탕, 갈치조림, 아구찜, 게장백반 등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생선회는 자칫 탈을 낼 수 있다. 여수에선 그걸 염두에 두고 막걸리식초를 그 옆에 세팅시킨다. 식중독에 노출되기 쉬위서 살균작용과 함께 입맛을 살리고 풍미를 돋우는 식초가 된장·고추장보다 더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집안마다 이를 엄격히 관리하고 전수했다. 특히 원초가 담겨 있는 촛병은 대물림됐다.
솜씨 있는 사장들은 이 식초를 잘 활용한다. 그걸 잘 모르면 토박이들은 ‘틀려먹었다’고 평가한다. 교동시장 근처 서대회무침만 2대째 지켜온 남산동 ‘개도집’은 여주인이 친정어머니의 손맛을 지키고 있다.
서대는 가자미목에 속한 생선이다. 영덕 강구의 특산물인 미주구리(물가자미)보다도 더 작고 길쭉하다. 혓바닥 모양처럼 생겨서 한자어로는 ‘설어(舌魚)’라 했다. 비린내가 없다.
서대가 가장 맛있을 때는 6~10월. 잡히자마자 죽기 때문에 회무침 위주로 먹어왔다. 껍질을 벗겨내고 어슷하게 썰어 막걸리 식초에 초벌한다. 이어 상추와 오이, 양파, 청양고추, 홍고추 등을 넣는다. 참기름을 둘러 한 입 씹으면 엄지 척!
서대회에는 기본 세 가지 풍미가 감지된다. 처음엔 새콤달콤, 다음은 매콤, 마지막엔 부드러운 감칠맛이 뒤따른다. 친구가 찾아오면 여수사람들은 서대회에 여수막걸리를 걸쳐 우의를 다진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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