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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육수 속 꽃처럼 피어나는 하모샤브…맛도 영양도 진짜배기

2016-11-11

■ 푸드로드 전남 여수

끓는 육수 속 꽃처럼 피어나는 하모샤브…맛도 영양도 진짜배기
이순신 연구자이자 여수 대표 식객인 김진수 시인. 그는 일반 관광객이 잘 모르는 여수 토박이 음식문화 복원에 힘쏟고 있다.
끓는 육수 속 꽃처럼 피어나는 하모샤브…맛도 영양도 진짜배기
희망선어의 한상차림

여수食客 겸 음식전도사로 종횡무진
1995년 여름철 창궐 비브리오패혈증에
횟집 난관 극복 고민중 ‘하모샤브’ 개발
삼계탕 응용 샤브 육수에 인삼 등 듬뿍

굴곡진 여수史의 숨겨진 부분에도 관심
현재 전남대 이순신硏 책임연구원 활동
2008년 만성리학살현장 추모비 비문
6개 점만 찍어 지극한 슬픔 표현 화제


여수식객 김진수 시인. 여수 하모 요리의 최초 개발자이기도 한 그는 요리연구가다.

나그네와 갑장인 그를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만났을 때, 초겨울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렸다. 우람한 덩치, 투박한 말투, 무척 큰 머리를 가진 그의 눈빛. 뭐랄까, 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처럼 스잔함이 묻어 있었다.

그는 궂은 날씨를 더 좋아했다. 알고보니 그의 가계도 6·25전쟁기, 학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수와 순천의 그 슬픈 학살사에 누구보다 제 가슴을 포개주고 싶어한다. 그 덕분에 여수사의 웬만한 비밀을 주워담을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전남대 이순신해양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다. 그가 관광객이 모르는 일제 잔재를 알려준다. 진남관 바로 옆에 허술하게 놓인 유물을 가리키며 그동안 여수가 얼마나 푸대접 받았는가를 저 유물이 다 말해준다고 한숨을 내쉰다.

“금빛 모래가 아름다웠다는 해운대 모래밭을 매립하여 전라도 내륙지방의 식량을 수탈해 가기 위한 전라선 종착역과 항만시설을 만들었죠. 제 추측입니다만 노량해전에서 왜군이 대패하고 도망을 치던 치욕을 씻기 위해, 그때의 전장인 노량바다에서 밀려오는 세찬 물줄기를 막기 위해 오동도 다리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여수음식 전도사로 각종 방송에 출연한다. 틈틈이 공무원교육 및 관광안내요원 교육도 한다. 그의 아내는 여수수산물특화시장에서 ‘거북수산’이란 가게를 꾸려간다. 그는 여수순천 학살의 기억이 잊혀갈 즈음인 2008년, 60년 만에 만성리 학살 현장에 추모비가 세워졌을 때 세상에서 가장 짧은 비문을 봉헌해 주목을 받았다. 1948~2008년, 그리고 6개의 점만 찍었다. 지극한 슬픔을 말줄임표로 처리해버린 것이다. 거듭 애꿎게 죽은 이를 희생자라 해선 안되고 ‘학살자’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와 만난 식당은 이순신 광장 옆 실내포장마차 같은 백반집 ‘희망선어’였다. 이모집에 온 것처럼 푸근했다. 하지만 골목 안에 있어 관광객은 잘 모른다. 솔직히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직하고 차지고 푸짐했다. 10년 전에 생겼는데, 그가 속이 고독해지면 어김없이 찾는 곳이라 한다. 이것저것 알아서 차려 달라고 하니 그렇게 해준다. 기본으로 깔린 반찬에도 날이 서 있다. 선어 보관고를 열자 여수의 고기로 불리는 금풍생이와 서대, 쏨뱅이 등이 보였다. 중심을 잡은 백합탕 국물은 재료와 재료 사이를 잘 결합시켜준다. 잘 구워낸 금풍생이의 살점은 여느 생선구이집에서 먹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육질이었다. 그가 대가리와 내장까지 맛봐야 된다면서 손으로 잡고 시범을 보인다. 모처럼 본바닥 제철음식의 위력이 뭔지를 실감한다.

그의 고향은 여수에서 장시간 배를 타고 가야하는 외딴섬 초도. 윗대 어른은 청도에서 터를 잡았다. 200년전쯤 경남 고성, 거문도 등을 거쳐 초도에 정착했다. 1972년에 중학교를 진학하여 2학년까지 작고한 시인 송수권한테 국어를 배웠다. 그 덕분에 시인이 된다. 그후 직장생활과 크고 작은 사업을 했지만 모두 풍비박산. 그 폐허에서 시심을 키웠다. 49세에 늦깎이로 등단한다. 6·25 전상자인 아버지를 대신해서 뒷바라지를 했던 막내 동생은 국가대표 요리사로 촉망받았다. 하지만 머나먼 모스크바에서 교통사고로 졸지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가계가 힘들어 한때 가족파산까지 신청했다.

◆하모요리의 신지평을 열어주다

하절기 여수는 하모(갯장어·참장어) 때문에 난리법석이다.

다들 국동항 앞에 보이는 ‘경도’로 간다. 거기에 하모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다. 거기에 하모 관련 식당도 운집해 있다. 거기서 하모샤브샤브가 태어난 줄 안다.

여수에서 하모샤브가 등장한 건 95년쯤. 그는 외지 식당에서 익힌 요리솜씨를 토대로 평소 뜨거운 물에 데쳐먹는 ‘유비키’ 스타일의 하모에서 한 발 더 나가 칼집을 넣어(현지에서는 이를 ‘송친다’고 함) 데쳤을 때 하모가 꽃처럼 피어나도록 했다. 삼계탕을 응용해 샤브 육수에 인삼, 녹각, 대추 등을 넣고 별스러운 국물맛이 나게 했다. ‘하모 1번지’ 경도에 하모 요리가 있었지만 그가 추천한 샤브 스타일은 아니었다.

“갯장어 잡이는 일제강점기부터 여수 앞 경도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잡아 올린 대부분의 갯장어는 일본에 수출됐죠. 이렇게 갯장어잡이 역사는 길지만 갯장어 요리가 본격적으로 대중에 알려진 것은 90년 중반 여수시 중앙동에서 제가 운영하던 한식집 ‘한우촌’에서부텁니다.”

해마다 여름철만 되면 비브리오 폐혈증의 창궐로 바닷가 횟집이 어려움을 겪었다. 대책이 필요했다. “궁여지책으로 하모회를 뜨거운 물에 데쳐서 나오는 유비키와 일본 즉석요리인 샤브샤브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특히 여름보양식인 삼계탕 재료를 기초로 하여 우리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조리법을 개발, 천일식당 등 주변에 그 기술을 알렸고 지금은 지역경제를 받쳐주는 대표적인 여수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가 또 마산과 방식이 다른 아귀요리를 알려준다.

“마산 오동동 네거리에서 장어국을 팔던 혹부리 할머니가 쓸모없는 아귀를 꾸들꾸들하게 말려 북어찜처럼 요리해낸 것이 시초라는데 여수는 마산과 방식이 좀 다릅니다. 완전 건조하여 시렁에 저장했다가 명절 때 뜨물에 불리고 쪄내 양념장을 발라 먹었어요. 요즘 여수 젊은이는 잘 모르는 참장어·쏨뱅이 젓국이란 게 있어요. 등 쪽으로 배를 갈라 완전건조를 해 두었다가 가을걷이가 끝나고 초가지붕 이엉을 올릴 때 지붕에 올라간 남정네들에게 따뜻한 햅쌀밥과 함께 끓여주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된장을 약간 푼 쌀뜨물에 무를 잘라 넣고 가마솥에서 뿌옇게 끓여낸 그 시원하고 구수한 맛도 이젠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렸어요.”

서대회도 두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는 무채를 축으로 한 종화동 ‘삼학집’ 스타일, 다른 하나는 상추, 깻잎, 쑥갓, 사과 등 생채소를 사용하는 ‘구백식당’ 방식입니다. 물론 두 집 모두 전통 막걸리식초를 사용하죠.”

삼치회의 경우 ‘대성식당’과 ‘노다지’, 아귀찜은 ‘복춘식당’, ‘끝심이네 아귀탕’ , 또 웅천에 있는 ‘해진이네’ 낙지국수도 반드시 맛보고 가라고 조언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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