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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칼럼] 인간의 노래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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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 7월5일은 마산수출자유지역 3공구 한국산연 공장 앞에서 723일째 이어져 온 천막농성이 마무리된 날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한국산연 해고노동자 12명은 이튿날 배포된 입장문을 통해 그간에 있었던 국내외 연대활동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세계 매출 8위의 일본 대자본 산켄전기의 부당해고와 위장폐업에 맞선 힘겨웠던 투쟁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산연노조는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흑자폐업에 550일간 저항했던 달성산단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과 거의 같은 시점에 투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일제 전범기업 다이세루에 맞섰던 경북 영천 다이셀코리아 노동자들과 비슷한 시점에 투쟁을 종결했다. 모두 외국인투자기업의 일방적인 폐업에 따른 대량해고가 갈등의 원인이었다.

산연노조의 역사는 깊다. 1987년 외투기업에서의 노조 결성이 허용되면서 한국산연에도 1995년에 노조가 들어섰다. 노조는 산켄전기의 1997년 자본 철수 결정에 반대해 300일 넘게 공장을 점거한 끝에 공장 이전을 무산시켰다. 2016년에는 다시 사측이 생산직 전원 정리해고를 통지하자 일본의 양심세력과 연대해 1년간 사이타마 산켄전기 본사 앞에서 원정투쟁을 전개했다. 결국 이듬해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으로 해고 철회를 쟁취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후 노조와의 공장 정상화 약속을 외면하고 국내 재벌 계열사 인수로 딴 살림을 차렸다. 2020년 7월 사측의 폐업 공고 이후 노조는 청산자금을 설비투자에 쓰자고 제안했으나 소용없었다.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연대의 손길이 답지했다. 특히 2020년 9월 일본 사이타마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시민모임을 결성해 산켄전기의 부당한 처사를 일본 내에서 폭로했다. 자신의 일처럼 헌신적이었던 이들의 연대활동은 투쟁의 마지막 날까지 지속되었다. 그것은 산연노조의 평가대로 "경이로움에 가까운 인간 존엄과 국제적 동지애"였다.

세계경제 회복이 더뎌지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조정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점점 더 빈번해지는 외투기업의 폐업이 노동자의 탓은 아니다. 그런데 폐업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파괴한다. 외자유치에 목매는 권력과 권력의 등에 업힌 자본의 신성한 재산권은 노동의 무덤 위에서만 수호된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잔인한 행태를 제어할 법제도는 아직도 없다. 보수 양당의 지배 속에 진보정당의 외국인투자법 개정안은 6개월 넘게 동의 의원 10명을 못 구해 최근 겨우 발의되었으니 갈 길이 멀다. 다이세루가 '먹튀'로 버리고 간 영천 공장부지도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외국자본에 무상 임대될지 모를 일이다. 외국자본이 국내 공장을 폐업했다가 나중에 국내 다른 지역에서 또 특혜를 받고 새 이름의 회사에 투자한다면 그것도 반겨야 할까. 곳곳에 노동의 무덤이 쌓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 방법이 우리한테 있기는 한가.

한국산연 해고노동자들은 복직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투쟁했다고 증언한다. 한일민중의 굳은 연대 속에서 끝내 민주노조의 깃발을 지켜낸 그들에게 필자는 감동과 함께 미안함을 느낀다. 1987년 일본국철의 민영화를 전후해 일본에서는 노동자 200여 명이 사업장에서 자결했고 1천여 명이 해고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죽음과 해고를 위로하는 일본 민중가요의 노랫말을 빌려 오랜 투쟁에 지치셨을 한국산연 해고노동자분들께 감히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우리도 "끝내 살아내어" "아름다운 세상을 이 땅에서 이루자"고.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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