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20808010000889

영남일보TV

[3040칼럼] 부자 감세와 '무속 경제학'의 귀환

2022-08-09

2022080801000232100008891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부두(Voodoo) 경제학'이라는 말이 있다. 부자와 기업의 세금을 깎아주면 실물투자가 늘어 경제가 살아나고 그 과정에서 세수입도 늘어난다는 극우 경제학자들의 망상을 아프리카 원주민의 무속신앙인 부두교에 빗댄 표현이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무속 경제학'쯤 되겠다. '공급주의'라고도 불리며 잠시 유행하다 오래전에 사장된 이 무속 경제학은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신자유주의 부자 감세 정책을 뒷받침하며 한때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하지만 세수입 감소로 재정 기반이 흔들리고 분배가 최악으로 치닫는 등 경제적 성과는 실로 보잘것없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가 공급주의를 두고 제대로 된 경제학이 아니며 실제 정책으로 추구되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매몰차게 평가했던 배경이다.

그러나 무속 경제학은 한국으로 건너와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에 기여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4년 추산에 따르면 세율 인하 효과만 따져도 2009~2013년 5년간 세수입 감소는 합계 62.4조원에 달했다. 그중에는 중소기업을 제외한 일반기업의 법인세 27.8조원, 고소득층 소득세 8조원, 종부세 8.2조원의 감세가 포함되었다. 그 덕에 분배는 악화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실물투자가 딱히 개선된 것은 아니다. 2009~2013년 5년간 민간 총 고정자본형성 명목금액은 직전 5년보다 67.9조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2004~2008년 기간 중 82.3조원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증가 폭이 20% 가까이 줄어든 결과였다. 나중에 박근혜 정부가 서민 증세로 담뱃세와 주민세를 올린 것도 이 시기 부자 감세로 세수입이 부족해진 탓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속 경제학은 한국에서 이미 실패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세제 개편안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그 무속 경제학을 기어코 지금 다시 되살려 내려는 것만 같다. 계획에 따르면 2023~2027년 5년간 세수입이 2022년에 비해 연간 약 13조원씩 합계 60.1조원 줄어드는데 그중에는 법인세 28조원과 종부세 8.1조원의 감세가 포함되어 있다. 법인세 감세는 자본소득을 늘리므로 부자를 위한 정책에 가까운데 심지어는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감세 금액이 더 크다. 소득세 역시 연간 급여 7800만원을 기준으로 고소득자가 저소득자보다 감세 금액이 더 크다. 정부는 부자 감세가 아니라고 하지만 틀림없이 부자 감세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감세로 실물투자가 늘어나 성장 기반이 확충되고 세수입도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인다. 영락없는 무속 경제학의 귀환이다.

정부는 법인세 감세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최근에는 미국과 영국에서조차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 수정 전망에서는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취약계층을 위한 선별지원과 함께 증세가 추천되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며칠 전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영국 킹스 컬리지 경제학자들의 포괄적인 최신 실증연구에서도 부자 감세는 성장에 별 도움이 안 되며 불평등만 심화한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유독 윤석열 정부만 세계적인 변화를 못 본 척한다. 무릇 명백히 실패한 경제이론이 살아있다면 그것은 그 이론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되고 있어서다. 오늘 정부의 부자 감세는 관을 열어 무속 경제학을 소생시키려는 허망한 시도다. 성공할 수 없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400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