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 <4>
수세식 화장실 등 최첨단·최초 수식어 달린 동인시영아파트
준공식에 박정희 전 대통령 방문해 화제 되기도
재개발에 들어가기 전인 지난 2017년 동인시영아파트 전경. 1969년 준공된 대구 최초의 분양아파트인 동인시영아파트는 5개 동, 272가구로 이뤄졌다. 방 2칸, 욕실 1개, 주방과 다락방이 있는 46.17㎡(약 13평)규모로, 당시로는 최첨단인 양변기를 갖춘 수세식 화장실 등도 도입했다.<영남일보 DB> |
대구 최초의 민간 분양 아파트인 '동인시영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신축 아파트가 들어선다. 50여년 동안 대구와 함께한 동인시영아파트는 '태왕아너스라플란드'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새로운 삶의 기록을 남길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대구 중구 동인동3가 위치했던 동인시영아파트는 지난 1969년 준공됐다. 총 5개 동으로 이뤄진 동인시영아파트는 272가구가 모여 살 수 있었다. 4층으로 구성된 동인시영아파트는 방 2칸, 욕실 1개, 주방과 다락방이 있는 46.17㎡(약 13평)에서 거주했다. 현재 준공된 아파트에 비하면 좁은 면적, 낮은 층이지만 준공 당시 대구 '최초' '최첨단' 아파트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화제를 모았다. 재래식 화장실이 아닌 양변기를 갖춘 수세식 화장실 등이 도입 됐기 때문이다.
동인시영아파트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나선형 경사로'. 이런 구조는 난방연료로 사용하던 연탄을 편하게 실어나르기 위해 도입됐다. <영남일보 DB> |
동인시영아파트의 대표적인 특징은 '나선형 경사로'다. 계단 대신 경사로를 설치한 이유는 '연탄'이었다. 난방을 연탄으로 해야했던 탓에 연탄 운반을 쉽게 하기 위해 경사로로 구성됐다. 이후 해당 경사로는 동인시영아파트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잡힌다.
동인시영아파트 건축 배경은 '판자촌 정리'가 주된 이유였다. 6·25전쟁 피란민들이 신천 인근에 자리를 잡으면서 판자촌이 생겨난 것. 이에 대구시는 피란민을 일정한 공간에 수용하기 위해 서민 아파트 건축을 계획하게 된다. 대구시 주택 관계자들은 서울 아파트 정책을 배워와 도입한다. 당시 서울은 32년 일본에 의해 세워진 충정로에 위치한 유리아파트, 62년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72년 남산에 외인 아파트 등이 준공됐던 상황이었다. 동인시영아파트의 우선 입주 순위는 판잣집에 살던 피란민들이 받게 된다.
이후 열린 준공식도 특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참석한 것. 박 전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 후 직접 내부를 둘러봤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준공식 참석 소식에 동인시영아파트는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제와 인기의 대상이었던 동인시영아파트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했다. 최첨단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노후 아파트로 전략해 버린 것. 이에 1990년대부터는 꾸준히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파트 부지가 좁아 사업성이 낮다는 이유 등으로 재건축은 시행되지 못한다.
이후 지난 2018년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공인시영가로주택사업조합이 'LH 참여형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재건축하기로 협약을 체결한다. 당시 비(非)수도권 1호 LH참여형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지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건축심의·사업승인 절차를 거쳐 지난 2020년 동인시영아파트 재건축 착공식이 진행됐다.
다행히 동인시영아파트는 다양한 기록으로 모습을 남겼다. 그중 철거 직전 영화에 등장했다. 지난 2019년 6월 개봉한 '비스트' 촬영 무대로 동인시영아파트가 등장한 것. 지난 2018년 12월 동인시영아파트는 영화의 촬영지로 활용됐다. 특히 대구 출신의 이성민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오성일 프로듀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인시영아파트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촬영에 적합한 분위기 있는 외벽과 독특한 계단 구조를 찾다보니 동인시영아파트가 적절해 촬영지로 선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사진전인 '동인시영 삶의 기록, 그리고 행복한 첫걸음', 게스트하우스처럼 동인시영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는 '동인동인 프로젝트' 등이 열리기도 했다.
동연시영아파트 자리에 진행되고 있는 태왕아너스라플란드 재개발 현장. 머지 않아 양변기를 갖춘 4층 짜리 최신식 아파트가 있던 자리에서 21층짜리 고층 아파트를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시민들은 동인시영아파트의 새로운 모습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과거 동인시영아파트 근처에서 거주했다던 권명자(여·62)씨는 "어린 시절 동인시영아파트을 지나갈 때 마다 친구들과 신기해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아파트가 철거됐을 때 과거의 기억이사라지는 거 같아 아쉽기도 했다"면서 "새로운 아파트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기도 한다. 새로운 아파트도 동인시영아파트처럼 대구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기억 됐으면 한다"고 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은 대구경북의 사라지거나 희미해져 가는 생활·문화 등을 기록하는 코너입니다. 한양가든, 전통시장, 가창창작스튜디오, 동인시영아파트와 관련한 추억과 사진이 있으신 독자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보도 예정인 대구시민야구장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과 추억이 있으신 분들의 연락도 기다립니다. 이외에도 독자 여러분들의 특별한 공간을 기록하고 싶으시다면 연락 주시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사라져 가는 삶의 기억들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연락은 이메일(yooni@yeongnam.com)로 주시면 됩니다.
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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