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렛미플라이' 긴 여운 남긴 작품
대구 무대 선 박보검 배우 '청년 남원' 그 자체
모든 배우들 열연에 관객들 '기립박수' 보내
뮤지컬 '렛미플라이' 무대 모습. <어울아트센터 제공> |
"평범한 우리 모두가 우주 같은 심연을 지닌 귀하고 슬픈 존재임을…."
몇 해 전 한 프랑스 작가(실비 제르맹)의 책을 소개하며 쓴 표현이다. 인간 개개인의 미시사(微視史)에 집중하다 보면, 한 사람의 세상이 정말 넓고 깊다는 사실에 다다르게 된다. 하루하루 지나간 평범한 일상들도 모두 내가 선택하고 지켜낸 나의 '우주' 일지 모른다.
지난 18~19일 대구 어울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뮤지컬 '렛미플라이'는 일상의 위대함을 새삼 다시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배우 박보검의 첫 뮤지컬 도전작으로도 유명한 렛미플라이는 '평범한 오늘 시작된 특별한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69년, 열아홉 청년 '남원'은 패션 디자이너라는 꿈과 사랑하는 '정분'과의 멋진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갑자기 쓰러진 남원은 2020년에 눈을 뜬다. 당황한 그의 앞에 자신을 '영감'이라 부르는 칠순의 '선희'가 나타난다. 남원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쉽게 내용과 결말이 예상되는 작품 같았다. 그저 따뜻하고 유쾌한, 그 속에 약간의 감동이 있는…. 혹시 너무 뻔한 이야기로 흘러가진 않을까 걱정도 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는 '원형'이 있고, 결국 그 원형을 맴도는 것은 창작물의 딜레마니까.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 작품은 무언가 달랐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여운이 강하게 남아있다. 살면서 내가 했던 '선택'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너는 묶인 게 아니야. (당당하게)선택한 거야." 작품은 위로를 건네는 듯 하다.
대사와 노래, 춤의 밸런스도 좋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눈물'을 부른다. 잔잔한 이야기 속에 눈물을 감춰두고 있다. 그 눈물은 누군가에겐 '슬픔',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정화'의 의미였을 것이다.
관객석 곳곳에서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장면에서' '왜'라고 묻는다면 꼬집어 말하기가 힘들다. 관객 저마다의 인생이 다 다를 테니까. 공연을 보다 갑자기 울고 싶어진 이유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다. 간혹 다른 사람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울음을 터트린 사람도 있었을 터. 관객석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지만, 뒤늦게 벅차오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뮤지컬 '렛미플라이' 공연 모습. <어울아트센터 제공> |
어울아트센터 함지홀의 무대 규모와 구조가 작품과 잘 어울려 더욱 몰입도를 높였다.
작품의 높은 인기 때문인지 온라인 상에서 일부 티켓에 웃돈을 얹어 거래를 시도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공연장에서는 "정당하지 않은 거래 및 공식 예매처를 통하지 않은 거래 적발시 예매 취소와 입장 제한이 될 수 있다"고 안내하는 등 대응에 나선 모습이었다.
공연 마지막 부분의 아름다운 넘버와 춤이 계속 귓가와 눈에 맴돈다.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관객을 웃기고 울린 배우들의 열연도, '인생을 지켜내고 사랑을 지켜낸' 우리들의 삶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한 것이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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