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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서산 간월암, 부처가 연꽃으로 환생한 듯…무학대사 깨달음 여기 있구나

2024-10-18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서산 간월암, 부처가 연꽃으로 환생한 듯…무학대사 깨달음 여기 있구나그때는 입추 지난 초가을 늦은 오후였다. 그럼에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벌써 떠났어야 할 폭염이 굶주린 들개의 이빨로 으르릉거렸다. 무지하게 더웠다. 어영부영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인간의 자연 파괴와 마구잡이 개발로 지구는 이미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지. 북극과 남극 양극 지방의 빙산이 빠르게 녹아내린다고 한다. 이를 요즈음 빙산 장례식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인류의 장례식으로 이어지고 우리가 우리를 죽여 나가는 상여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여 섬뜩하다. 빙산이 녹으면 해수면도, 바닷물 온도도 올라가고, 종국에는 지구가 단동 비닐하우스처럼 푹푹 찌는 열섬 지옥이 될지 모른다.

곧 피가 거꾸로 흐를 것만 같은 이런 상상에서 벗어나 간월암으로 걷는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이면 날마다 좋은 날 )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네) 철판 글씨가 보인다. 얼핏 두 눈을 동여매는 내용이다. 그러나 철판은 허공에 박은 판타지 같고 그 뜻이 긴가민가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좋은 날은 어떤 날이며 극락은 또 어디 무얼 하는 곳인가. 도무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아리송한 문구다. 그러나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 날마다 현재를 단 하나의 현실로 인정하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거의 기억, 미래의 상상은 현재에서 경험하게 되는 비현실이다. 마치 과거가 생의 게놈지도인 양, 아직도 과거에 턱걸이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사람, 미래가 현재에 벌써 찾아온 듯이 살아가는 사람은 살 맛나고 찰진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그들은 이미 떠나버려 있지도 않은 시간 속에 살거나 아직 실재하지 않는 시간 속에 살면서 삶에 의미와 변화를 주도하는 현재의 시간을 희생하고 있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수행했던 암자 무학사
간월도 섬 속에 갇힌 달빛 내린 밤풍경 일품
간조 시 뭍, 만조 시 섬이 되는 신비로운 곳
천수만 간척사업에 방조제 생기며 바닷길 열려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서산 간월암, 부처가 연꽃으로 환생한 듯…무학대사 깨달음 여기 있구나날마다 좋은 날은 바로 현재를 직면하고 거기에서 삶의 의미와 변화를 찾아내는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과거나 미래에는 현재라는 시간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과거에는 시행착오를 일으킨 미완성과 즐거움, 또 현재에 도움이 되는 경험들이 누적되어 있다. 과거를 인식하되 그 속에 살아서는 안 된다. 미래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의 계획을 설계하되 현재의 대용으로 그 미래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내적 미완성 상태를 완성하려는 동기와 욕망은 현재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것이 되면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네'가 이루어질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척에 있는 간월암으로 간다. 허걱 이를 어쩌나, 간월암은 만조의 바닷물로 섬이 되어 있었다. 손이 닿을 듯한 바투 바다 위에, 간월암은 마치 큰 꽃처럼 피어 있었다. 하루 두 번, 간조 시에는 뭍과 이어지고 만조 시에는 섬이 되는 간월도. 바다에 웅크려 있던 부처님이 연꽃처럼 환하게 피어난 것 같은 간월암. 바로 코앞이지만 건널 수 없는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우두커니 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간월은 달을 본다는 뜻이지만, 간월도 끝머리 땅에서 바라보는 간월암은 마치 낮달처럼 얄푸른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섬이었다. 그리고 그 섬은 꿈속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견인선 같았다. 섬을 보면 감정이 파도처럼 일고, 달을 보면 어렴풋이 떠오르는 추억의 잉걸불, 모두가 한편 경전이고 한낱 꿈이었다. '세상을 보는 사람은 그저 꿈꿀 뿐이지만 자신의 내면을 보는 사람은 비로소 그 꿈에서 깨어난다'고 칼 융은 말했다. 저 낮달 같은 간월도가 내 내면의 섬이 되기 전에는 나는 그저 꿈꿀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내가 꿈에서 깨기 위해서는 섬을 내 내면으로 옮겨야 했다. 섬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서산 간월암, 부처가 연꽃으로 환생한 듯…무학대사 깨달음 여기 있구나그렇다면 내가 섬 안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 이제 저 섬은 건널 수 없는 물 얼룩 섬이 되고 만다. 그러니까 내면을 못 보는, 이 모두가 꿈이 아닌가. 우리가 말하는 사바세계는 꿈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바다는 금세 물이 차올라 출렁인다. 바다색이 시나브로 파래질수록 나는 파란 꿈속에서 노 저어야 했다. 꿈 이야기라면 우리가 부엌칼 쓰듯 자주 인용하는 이야기가 있다. '옛사람이 꿈에서 나비가 되어 황홀하게 날아다니다 꿈을 깨니 놀랍게도 자기 자신이었다. 이리하여 그는 자신이 꿈에 나비로 변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자신으로 변한 것인지,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알쏭달쏭했다. 내가 나비 꿈을 꾸면 나비는 내 꿈속에서 날고, 나비가 내 꿈을 꾸면 내가 나비의 꿈속에서 산다. 말하자면 나와 나비는 꿈속에서 일란성 쌍생아이었다.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나누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꿈속에는 꿈 아닌 것도 있다. 태초부터 사람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것이 있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이쯤에서 나는 자리를 털면서 몇 차례나 다녀온 간월암을 회상했다. 간월암은 바닷길을 여닫는 곳이고, 달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곳이다. 고려 말 무학대사가 여기서 수행 중 홀연히 도를 깨우쳐 암자를 무학사, 섬을 간월도라 부르게 됐다. 그 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됐던 것을 1941년 만공 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어느 날 만공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다가 그 현상을 노래했다. '불조불우객(佛祖不友客 : 부처님과 조사와 더불어 하지 않는 나그네가). 하사벽파친(何事壁波親 : 무슨 일로 푸른 물결과는 친하게 되었는가). 아본반도인(我本半島人 : 나는 본대 반도 사람이라). 자연여시지(自然如是止 : 자연에서 바로잡고 멈추었노라).'

경지가 높았던 만공의 하심(下心)과 조국을 잃은 선사의 한탄이 느껴진다. 그 후 간월암은 벽초, 서해, 진암 큰 스님의 발길이 지나갔고, 경봉, 효봉, 성철 스님이 수행의 자취를 남겼다. 무엇보다 간월암이 세상에 유독 알려진 것은 만공의 기도로 인해서였다. 1942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했고, 기도가 끝난 사흘 후, 조선이 독립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라의 해방 소식을 전해 들은 만공은 무궁화꽃에 먹물을 듬뿍 찍어 '세계일화(世界一花)' 라 쓰고는 대중에게 설법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더라, 이 나라와 저 나라도 둘이 아니더라. 이 세상 모든 게 다 한 송이 꽃이더라, 머지않아 조선이 세계일화의 중심이 될 것이고만.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저 미웠던 왜놈까지도 부처로 보아야 이 세상이 편안할 것이네'라고 하셨으니 그 법기의 크기를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는가.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서산 간월암, 부처가 연꽃으로 환생한 듯…무학대사 깨달음 여기 있구나 1980년대 천수만 간척 사업으로 간월도는 육지와 연결한 방조제가 생겼다. 이 방조제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강한 물흐름으로 난관에 봉착하자, 청소년 시절 아버지의 소 판 돈을 감춰 가출한 재계의 전설적인 인물 정주영 회장이 폐유조선을 가라앉혀 매조지 한 바로 그 방조제다. 정주영 회장 특유의 반문 말씀은 '불가능하다고, 이봐 해 봤어'였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주영 회장. 오늘 왠지 그분의 신화가 그리워진다. 돌아나가면서 스카이워크를 걷는다. 좀 이르기는 하나 하마부터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해는 바다 수면으로 떨어지고 있다. 해가 기울수록 하늘과 바다는 더 붉게 이글거리며 불타올랐다. 스카이워크는 마치 바다 위를 걷는 것처럼 편안하고 가뿐했다. 스카이 워크 끝에는 삼중 원으로 만든, 갈매기를 그려 넣은 조형물이 있었다. 그 원안에서 조망하는 간월암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공간에 아스라이 떠 있었다. 나는 너무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 풍경에 깜짝 놀라 어금니를 꽉 물고, 치솟아 오르는 기쁨과 환희를 진정시켜야 했다. 정말 여기가 날마다 좋은 날 바로 그곳 극락이 아닐까.

글=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강경애 여행 사진작가


☞문의: 충남 서산 간월암 (041)668-6624

☞주소: 충남 서산 부석면 간월도1길 119-29

☞트레킹 코스: 주차장-간월도-방파제 등대-스카이워크

☞인근 볼거리 : 꽃지해변, 안면암, 삼길항, 황금산, 부석사, 개심사, 해미읍성, 서산버드랜드, 벌천포 해수욕장, 용현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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