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박씨 4선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병호씨의 모친 박계순, 박차순, 박말순, 박복순씨. <박병호씨 제공> |
누구에게나 지난날에 대한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사진은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기억이자 추억으로서 현재를 거슬러 과거로 가는 돌아가는 시간 여행이다. 약 70년 전, 경북 고령군 쌍림면 백산리 117번지 본가에서 찍은 한 장의 흑백 사진(5.4㎝×7.7㎝)이 있다.이 사진은 2025학년도 초등학교 3학년 사회 교과서에 실렸다. 이는 어린이의 마음이 4선녀의 마음을 훔쳐 교과서에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4선녀가 동심을 훔쳐 교과서에 나타난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사진 속에는 낭만과 추억이 있어 꿈을 꾸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한층 더해 줄 것이다. 특히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밀양 박씨 일가의 5녀 1남의 자녀 중에서 박차순, 박계순, 박말순, 박복순 등 네 자매이다.
원본 사진은 크기가 매우 작은데다 오랜 세월 속에 빛이 바래고 구김이 많은 등 훼손 상태가 심각했다. 광주 사진병원(대표 김충식)에 의해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로 원본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교과서에는 '디지털 기술로 복원되는 과거'로 소개되고 있다.
이 사진을 통해 1950년대 우리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배경 속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농촌의 대표적 상징인 초가집이다. 초가집 본채는 3칸(방 2, 부엌 1) 집이었다. 집 뒷산에는 병풍처럼 대나무 숲이 있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 오는 날이면 천상의 대향연이 펼쳐졌다. 대나무는 서로 온몸을 비비며 울고, 이름 모를 새들은 애달픈 소리로 울어댔다. 이 자연의 대합창 소리에 6남매 자식을 둔 부모는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은 태산과 같이 높았다. 숲 속의 주인공인 다람쥐와 청설모는 마치 제 집인 양 온 집을 휘젓고 다녔으며, 줄타기, 벽 기어오르기 등 온갖 재주를 부리기도 하고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이리 숨고 저리 숨었다.
그리고 사진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2채의 별채가 있었다. 그중 하나의 별채에는 디딜방앗간, 곳간, 헛간이 있었고, 또 다른 별채에는 소마구, 돼지우리, 닭장, 그리고 변소가 있었다. 변소는 어린 동생들이 밤중에 대소변을 보려고 할 때 부모나 언니, 누나들은 행여 꺼질세라 호롱불을 앞세우고 '달아, 달아. 별아, 별아. 내 똥 줄게 니 똥 다오' 하고 노래를 불렀다. 골목길 옆 마당 한 구석에는 감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대문에는 찌그러진 빈 깡통을 매달아 사람들의 출입을 알렸다. 또한 주인공인 네 자매의 한복, 머리는 조선시대 여인처럼 긴 머리를 곱게 빗어 비녀를 지르거나 단발머리 모양을 했다. 그리고 고무신을 신었다.
이처럼 사진 속에는 우리의 과거의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촌의 정취를 더하게 하고 낭만과 추억이 묻어난다. 이 진귀한 가족사진은 사실의 기록이자 과거를 증명하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이 사진이 교과서에 실려 미래 세대인 후손들의 교육에 활용되는 것은 한 가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 교육 발달사에 하나의 족적이 될 것이다.
최병호〈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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