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
"비 온 뒤 하늘이 더 푸르다. 구름과 안개 뒤 떠오르는 태양처럼 자네 또한 그럴 것이다." 직장 일로 고민할 때 필자를 격려해준 J사장님이 있다. 나의 중학교 담임선생님과 절친이셔서 필자를 살뜰히 챙겨주신다. 사업가로서도 유능하여 회사를 크게 키웠을 뿐만 아니라 효심이 깊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이다. 그분의 어머니는 74세에 삼성서울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6년째 통원 치료를 하셨는데 대구에서 서울까지 그분이 직접 운전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 "장시간 자동차를 타는 게 힘들지 않냐"고 걱정하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장시간 자동차를 타니까 아들과 오래 대화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하며 늘 밝은 얼굴이셨다고 한다.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 J사장님으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었는데 곽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으셨다. 삼성병원 교수님으로부터 "전이성 유방암으로 항암치료를 오랫동안 받았습니다. 추가 항암치료의 이득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말기 상태입니다. End-of-life care 부탁드립니다"는 소견서를 받고 집에서 지내던 중이셨다. 27일 곽병원에 입원하여 의료진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어머니는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고 11월12일 퇴원하셨다.
그 후 한 해가 저물 무렵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지난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일부러 부고를 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곽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진심은 천심임을 느꼈다며 감사하다고 수차례 강조하셨다. 간혹 의료진이 최선을 다한 것을 알면서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의사에게 과실을 따지는 보호자가 있는데 행여라도 마음 쓰여 할까 봐 배려해주신 것이 아닌지.
선한 사람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선과 악, 생과 사에 대해 생각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죽음을 마주할 때면 혼란스럽다. 인재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을 때 더욱 그러하다.
지난 연말 또한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제주항공참사 희생자 179명의 죽음을 목도해야만 했다. 공항 개설의 정치적 배경을 알고 위험성을 알았더라면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각박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수고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을 여행이 비극으로 끝났다. 권력과 회색 자본이 손잡을 때 엉뚱한 데서 희생자가 생긴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킨다는 이유로, 때로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가 목에 핏대 세워가며 네 탓, 내 탓 서로 비난하고 분노하고 있을 때 어떤 이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벅찼고 어떤 이는 목숨을 잃었다. 분노와 갈등으로 사회가 뜨거워진 오늘날 차분하고 진중하게 국정 현안이나 개인의 과제를 바라보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애도의 한 방법이 아닐까. 국정 관련 글과 영상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지금 침착하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문 일부를 소개하며 혼란 속에서 지혜를 잃지 않고 혼돈 속에서 진리를 분별해내는 국민 중 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이해받기보다 이해하며/사랑받기보다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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