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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순의 문명산책] 복희가 여와를 만났을 때

2025-01-10

뱀이 가진 긍정과 부정 이중성
문명교류 거치며 공존 상징화
상생 무너진 양극의 한국사회
고대인류의 그림이 들려주는
지혜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김중순의 문명산책] 복희가 여와를 만났을 때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2025년 을사년, 푸른색에 해당하는 을(乙)과 뱀에 해당하는 사(巳)가 만나 푸른 뱀의 해가 되었다. 하늘의 수 천간(天干) 10개와 땅의 수 지지(地支) 12개를 씨줄 날줄로 엮어 만든 육십갑자의 시간표를 따른 것이다. 이 푸른 뱀 때문인가? 희망차야 할 새해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 1905년에 있었던 을사늑약의 허탈함을 한탄하던 '을사스럽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을씨년스럽고 섬뜩한 감정은 혀를 날름거리며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뱀의 모습에서 느껴온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뱀은 풍요와 다산을 촉진하고 영리함과 지혜를 드러내기도 한다. 허물을 벗고 새로운 생명으로 등장하는 모습, 겨우내 죽은 듯 사라졌다가 봄에 다시 깨어나는 경이로운 모습은 죽음을 이겨내는 부활의 희망이기도 하다.

뱀만큼 긍정과 부정의 이미지가 엇갈리는 동물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과 가축을 해코지 하여 유목 민족에게는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면, 식량을 갉아먹고 병을 옮기는 쥐를 잡아먹어 농경 민족에게는 '마을 지킴이'로서 친근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뱀은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는 신의 강력한 권능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생명과 치유의 신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뱀이 갖는 이러한 이중성은 고대 인류의 그림과 조각에서도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한다.

신강위구르 투루판 지역의 아스타나 고분에서 발굴된, 7세기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수사신교미도(人首蛇身交尾圖)'가 대표적이다. 복희와 여와라는 두 인물이 사람 머리에 뱀의 몸과 꼬리로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의 그림이다. 복희는 인간에게 불을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고, 혼인과 삶의 방식을 개척하여 문화를 이끌어낸 신이었다. 여와는 진흙에 생명의 끈을 이어 인류를 만들었고,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생명의 신, 번영의 신이었다. 그러나 이 다른 두 신들이 이 그림에 이르러 하나로 합체가 된다.

투루판 석굴은 4세기에 만들어진 불교사원이지만, 여기서 발견된 자료에는 불교적 소재뿐만 아니라 도교,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등 타종교와 관련된 것들이 상당 부분 섞여 있다. 실크로드에서 투루판은 돈황과 더불어 문명교류의 중심지였기에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다. 따라서 복희와 여와 역시 타문화와의 만남 속에서 만들어진 형상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의 개별 기능을 뛰어넘어, 뱀이 가진 이중성을 '공존'과 '형평'의 상징으로 등장시키기 시작한다. 그 원형이라 할 만한 것들이 기원전 24세기 이전부터 수메르 지역을 비롯하여 이집트와 인도는 물론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다수 등장하고 있다. 남미나 동남아시아에서도 볼 수가 있고, 심지어 고구려 벽화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뱀 지팡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문명의 흔적을 따라가 보면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던 게 아니라 살아서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범세계적인 신화의 모티브를 중국 문화의 기원으로 삼아 중화중심주의의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고 있다. 문명교류의 다원적·상생적 가치를 못 본 체하고 이처럼 극단적 중심주의로 향하는 다수의 횡포를 보면, 양극으로 나누어진 한국사회의 현실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이래저래 을씨년스럽다. 국립박물관에서 상설로 전시되고 있는 복희와 여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계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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