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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친절에 관한 특별한 기억

2025-01-27

[단상지대] 친절에 관한 특별한 기억
이은미 변호사

10년 전 일이다. 나는 회사에서 갑자기 복부에 큰 통증을 느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허리를 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회사 바로 앞 병원에 가니 염증 수치가 너무 높다며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는 종합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한 뒤 응급실에 누워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한참 뒤 의사는 급성신우염이고, 최소 일주일은 입원해서 항생제를 링거로 맞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병원 천장을 보면서 웃었다. 드디어 나도 쉬는 건가.

아침마다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해서 딱 3일만이라도 입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고 지쳐 있었던 때였다. 나는 감염내과 병동 2인 1실 입원실에 입원했다. 내 옆 침대 여자는 4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나는 침대에 커튼을 치고 잠만 잤다.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았고 머리도 감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나는 며칠을 굶어서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는 사람처럼 잠을 먹고 있었다.

입원 며칠이 지나도록 옆 침대 여자와 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꾸준히 자신이 먹는 간식의 일부를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 날 옆 침대 여자가 나에게 환자복 한 벌을 들고 와서는 갈아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해서 내 침대 시트를 갈아주라고 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그녀는 "어디 염증이 있는 모양인데, 그러면 위생이 중요하잖아요"라고 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머리는 왜 안 감는지 물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첫째는 귀찮아서이고 둘째는 팔에 링거를 꽂은 채 머리를 감으면 주사 바늘이 쑥 더 들어갈까봐 무서워서 그렇다고.

그녀는 자신은 주사를 가슴에 맞고 있으니 양팔이 자유롭다며 나에게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제야 몇 마디를 해 본 사람 손에 이끌려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링거를 맞은 팔을 쭉 빼고 어색하게 쭈그려 앉은 내 머리를 정성스럽게 감겨 주고, 말려주고, 빗어 주었다.

나는 며칠 만에 환자복을 갈아입고 머리도 감고 상쾌한 기분으로 누워서 그녀에게 병명이 뭔지 물어보았다. 악성림프종암이고 항암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밤에 자다 깨서 화장실에 갈 때 그녀가 어두운 병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계속 검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사실 그녀도 두려웠을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나중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던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가 결국엔 살지 못하는 사람도 종종 보는 병원 생활을 하고 있겠지. 자신의 마음도 복잡하고 힘들 텐데 생면부지의 나에게 그런 친절을 베푼 그녀에게 감동이 느껴졌다.

그녀가 입원 기간 동안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도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조건 없이 내게 베풀었던 친절의 기억들은 퇴원 후 생활하는 데에도 힘이 되었다. 우리는 퇴원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고창 선운사 근처로 집을 옮겼는데 동백꽃이 예쁘게 피었으니 놀러 오라고 했다. 내가 오면 머리를 감겨주겠다는 농담을 하면서.

지금은 그녀를 볼 수 없다. 시간이 흘러 내가 그녀의 나이가 되고, 그 나이를 넘어가면서 그녀가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에 처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인 아이들을 두고 떠났을 그녀는 자신이 힘든 상항에서도 타인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지쳐 있었던 나에게 잠시 신이 와서 위로해주고 간 것 같다. 나는 이후 곤란한 민원인을 만나면, 내가 저 사람에게 최초로 친절했던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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