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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관람객의 눈물샘을 건드리는 줄무늬 색면추상의 뭉근한 아름다움

2025-07-25 06:00

션 스컬리의 작품세계 속으로

션 스컬리, 'Landline Melancholia', Oil on Aluminum, 215.9×190.5cm, 2016

션 스컬리, 'Landline Melancholia', Oil on Aluminum, 215.9×190.5cm, 2016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면 한 화가와 마주한다. 벽면을 비춘 영상에는 노장의 화가가 화폭 앞에서 연신 붓질을 한다. 채색을 하다가 멀리 떨어져서 지긋이 바라본다. 다시 색을 올리고 중심을 잡는다. 마치 잘 정돈된 밭고랑에 갖가지의 씨를 뿌리는 농부 같다. 농부는 땅에 씨를 뿌리지만, 화가는 화폭에 색을 칠한다. 이들의 치열한 노동은 각자의 예술이 된다.


이 노장의 화가는 누구일까? 현대 추상화가 션 스컬리(1945~)다. 우리에게 낯선 화가인데, 현재 대구미술관에서 그의 대규모 회고전('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 3월18일~8월17일)이 열리고 있다. 그만큼 미술계 내에서 높이 평가받는 작가가 되겠다. 수직과 수평의 기하학적인 색면으로 조형한 작품이지만 신기하게도 대형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감상자도 있다고 한다. 선배 화가인 피트 몬드리안(1872~1944)과 마크 로스코(1903~1970)를 거쳐, 눈물을 부르는 션 스컬리의 작품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

몬드리안,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 캔버스에 유채, 52.5×60cm, 1920, 암스테르담시립박물관

몬드리안,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 캔버스에 유채, 52.5×60cm, 1920, 암스테르담시립박물관

션 스컬리 작품의 수직과 수평은 몬드리안 작품의 디자인적인 요소에 그 맥이 닿아 있다. 네덜란드에서 출생한 몬드리안은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시켜 면과 선으로 표현한 추상화가다. 그의 추상화는 사실적인 나무를 점차적으로 형태를 추려서 압축한 선과 면, 색채로 균형을 이룬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을 사용하여 명랑하다. 흰색 바탕에 검은 선을 긋고 분리된 면에 빨강, 파랑, 노랑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에게 수직선은 생기를, 수평선은 평온함을 의미했다. 두 선을 적절하게 교차하면 '역동적인 평온함'에 도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몬드리안은 "예술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대용물"이라고 했다. 훗날, 그의 기하학적인 작품은 패션디자이너(이브생 로랑)에게 영감을 주어 옷으로 제작됐다. 이 패션이 인기를 얻자 소품과 인테리어에도 사용될 정도로 친숙해졌다.


'빨강, 검정, 파랑, 노랑, 회색의 구성'은 철저하게 계산된 면을 그린 후 신중하게 색을 올렸다. 불평등한 균형 속에서 평온한 대칭에 도달하고자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강약의 액센트를 준다. 지휘자가 화음을 맞추듯이 지루하지 않고, 느슨하지 않게 표현된 작품은 감상자에게 '평형상태'에 이르도록 한다. 가장 단순한 수평과 수직의 작품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 속에 감추어진 불변의 실재(實在)를 예술로 승화하고자 했다.


마크 로스코의 숭고한 색면추상

션 스컬리의 줄무늬로 표현된 작품은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을 연상시킨다.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10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겪는다. 그는 지하철의 풍경을 그리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했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신만의 추상표현을 구현한다. 화면을 직사각형으로 분리하여 두세 개의 색채를 모호하게 올리는 색면추상을 구축했다.


마크 로스코, '초록과 적갈색', 1953, 워싱턴 필립스 컬렉션

마크 로스코, '초록과 적갈색', 1953, 워싱턴 필립스 컬렉션

마크 로스코는 직사각형을 음악의 선율에 맞춰 넓은 면과 작은 면으로 분리한 후, 비슷한 계열의 색을 올리거나 보색 계열의 색을 올려 감상자가 무한한 상상력에 도달하도록 한다. 큰 화면에 배치한 직사각형들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화면에 최대한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색채가 화가의 언어가 된다. 그는 "어떤 화가들은 모든 것을 말하려 하지만, 나는 말을 적게 할수록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말보다는 간결함 속에서 직관하기를 바랐다.


'초록과 적갈색'은 반대 계열의 초록과 붉은색을 사용하여 평형의 잔상을 남긴다. 화판에 남색을 칠한 후 아래 면을 3/1로 분리하여 붉은색을 완전히 올리지 않고 바탕색인 남색이 테두리로 남도록 했다. 위에는 밝은 파랑을 칠한 후 녹색으로 처리했다. 파랑의 바탕 위에 붉은색과 녹색을 올려 깊은 질감이 우러나오도록 했다. 초록과 적색은 반대색인데 파랑의 바탕색 때문에 올려진 색채가 짙은 맛을 우려낸다. 말끔하게 칠하지 않은 색면들이 강한 흡인력을 발산한다.


션 스컬리의 휴머니즘적인 색면추상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이 숭고미에 닿아 있다면, 션 스컬리의 색면추상은 휴머니즘적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션 스컬리는 미국과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대 추상화가다. 그의 추상화는 은유적이고, 생성적이다. 회화, 사진, 조각, 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작가는 풍부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에 기반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룬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여러 겹으로 덧칠함으로써 몽환적인 마티에르를 형성한다. 풍부하면서도 오묘한 색채감각과 시선을 사로잡는 강한 공간감을 지닌다.


대구미술관에 설치된 그의 작품 수는 방대하다. 대형 작품이 주는 엄숙함과 장엄미가 미술관을 가득 채운다. 대표작인 '빛의 벽(Wall of Light)'과 '랜드라인(Landline)' 연작을 비롯하여 활동 초기인 1960년대의 구상작품이 펼쳐진다. 1970년대의 정밀한 선들이 교차하는 구조적인 격자(Supergrid) 회화도 전시되어 있다. 캔버스 패널 안에 또 다른 패널을 배치하는 인셋(inset) 기법을 활용한 1980년대의 대형 회화는 감상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밖에 수채화, 연필 드로잉, 디지털 프린트 등 작가의 작품세계에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게 작품을 설치했다.


션 스컬리, 'What Makes Us Too', Oil, acrylic and oil pastel on aluminum, 299.7×571.5cm, 2017

션 스컬리, 'What Makes Us Too', Oil, acrylic and oil pastel on aluminum, 299.7×571.5cm, 2017

어떤 화가의 작품은 낯선 장소에서 감각한 체험과 인상이 창작의 모태가 된다. 션 스컬리도 그랬다. 1969년 모로코 여행에서 화려한 색채의 카펫을 만난다. 강한 영감을 받는다. 색채가 더 깊어진다. '빛의 벽(Wall of Light)'은 마야의 오래된 성벽 사이로 뿜어져 나온 빛을 본 후, 신비스러운 광경을 표현한 작품이다. "내 작품엔 세계의 다양한 요소들이 융합돼 있다"고 할 만큼, 여행에서 마주한 감정과 경험이 추상화의 매개체가 됐다. 불규칙한 수직과 수평은 평형을 맞추며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감성으로 채워졌다.


"나는 줄무늬와 띠, 선, 격자를 사용하여 리듬을 만든다. 마치 삶의 음악적 리듬처럼 매번 다른 조합, 특성 그리고 관계성을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싶다. 그것은 정답을 찾는 행위가 아니라 음악처럼 끝없이 계속되는 일종의 확인이다." 이런 생각은 작품 'What Makes Us Too'(2016)으로 오롯이 나타난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을 각각의 사각형에 색을 칠하고 그 위에 바탕색과 비슷한 계열의 색으로 사선을 그었다. 검은색과 회색이 수평을 이루며 화면에 균형을 맞춘다. 조각보처럼 사각형이 서로 마주하며 둥실 떠 있는 느낌이다. 각각의 색면이 떠다니다가 다시 뭉친 조형적인 합창 같다.


션 스컬리는 작업을 할 때 자연에서 해답을 얻는 경우가 많다. "나는 땅, 바다, 하늘을 생각한다. 그것들은 항상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랜드라인(Landline)' 시리즈에도 자연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 'Landline Melancholia'(2016)는 6개의 면을 수평으로 분리한 후, 각각의 색을 마르기 전에 덧칠했다. 그가 주목한 땅과 바다, 하늘이 맞닿아 있어 순환성을 낳는다. 각 색상은 수면 위를 비추는 것 같고, 녹색의 벌판 같기도 하다. 때로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같다.


음악적 리듬을 선사하는 줄무늬들의 협연

몬드리안의 삼원색 작품은 조명으로 널리 사용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은 책 표지 그림으로 각광받는다. 그런가 하면, 현대 추상회화의 역사를 쓰고 있는 션 스컬리의 색채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왜 그럴까. 우리의 전통적인 색동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그림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뭉근한 힘이 있다. 지친 이들의 심신을 토닥이며, 마음의 '평형'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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