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기철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원장
최근 정부는 국민 모두의 행복을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역대 정부가 정책 비전으로 '행복'을 제시했지만, 현 정부만큼 절실하게 강조하진 않았다. 정책 목표를 행복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현실에 직면해 있음을 방증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소득수준이나 경제력에 비해 행복감은 상당히 낮다. UN 자료를 보면 147개국 중 1인당 GDP는 21위로 상위권이지만, 긍정적 감정(111위), 선택의 자유(104위), 사회적 지지(84위) 수준은 하위권이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풍요가 합쳐질 때 비로소 행복감은 높아질 수 있다.
모두의 행복을 표방한 정부는 5대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그 중 '기본이 튼튼한 사회'는 8대 전략과 37대 국정과제를 포함한다. 다른 목표에 비해 많은 전략과 과제가 담겨 있다. 행복한 사회를 위해 기본을 튼튼히 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로 읽힌다. 8대 전략에는 안전, 복지, 건강, 가족, 근로환경, 성평등, 교육, 문화 등이 포함돼 있다. 이중 단연 눈에 띄는 영역은 성평등이다. 성평등 주관부처 장관은 19개월째 장기 공석 상태이고,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부처의 존폐 위기로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반전되면서 여성가족부 확대 개편 및 기능 강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전문가들의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우선순위로 성평등 정책을 강화하고 실행력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는 듯 보인다.
여기서 '내 삶에 기회를 여는 성평등'으로 명시한 정책 방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만들고, 국민 모두의 행복감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행복의 출발점을 '내 삶'에 둔 것은 놀랍다. '우리'가 아닌 '나'라는 개별적 존재들이 모인 개성 있는 사회가 행복의 시작이라는 관점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우리' 중심 문화가 강하다. 하지만 '우리'를 강조하다 보면, 책임 있는 나의 용기와 독립적 사고를 상쇄시킬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주장했다. 우리는 나를 가두는 우리에 불과하다고. '나'가 깨어있어야 '우리'가 건강해진다고. 그러한 개인들이 모인 사회가 튼튼하고, 그러한 개인들이 만든 국가가 부강하다고.
성평등이 기회를 열어간다는 접근도 새로운 관점이다. 사전적으로 '기회'란 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적절한 시기나 경우를 뜻한다. 성평등의 기능을 바로 이러한 '기회'로 해석한 것이다. 오랫동안 좋은 사회를 주제로 연구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레인 켄워시 교수는 "좋은 사회는 구성원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이며, 그런 사회에는 다양한 기회가 풍부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행복의 첫 번째 조건으로 기회를 강조한 것이다. 성평등이 내 삶에 기회를 열어주고, 그러한 기회가 나의 행복감을 높인다는 것이기에, 결국 성평등은 행복으로 귀결된다. 이런 측면에서 성평등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다.
그렇다면 격변의 시기에 지역에서 성평등 정책은 어떻게 펼쳐가야 할까? 이러한 고민을 대구시는 새로운 도전으로 풀어가려 한다. 그중 2016년부터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해 추진하던 '여성UP엑스포'를 올해부터 '여성UP포럼'으로 전환하면서 의미있는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그간 전시·체험 위주의 행사에서 정책·담론 생산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다. 대구시는 성평등으로 행복해질 풍성한 기회를 만들었다. 정책 개발 과정에 다양한 '나'가 모여 각자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토론의 기회를 마련한 것인데, 성평등 정책을 소수 권력자 중심의 결정이 아닌, 다수의 독립된 '나'의 목소리로 만들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로 보인다. 개성 있는 '나'가 모이면 서로 다른 경험과 시각이 교차하면서, 혁신적이고 다채로운 해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토론의 광장에서 쏟아져 나올 성평등 정책들이 기대된다. 다양한 개인들이 새로운 사유와 실천의 기회를 누리길 바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모두'가 함께 빛날 것이다. 성평등이 열어주는 기회는 우리를 빛내고, 나를 행복하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배기철<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원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