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시인
홀딱 벗고 대곡 사거리에 서 있어보았다
1972년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담대함 또는 무지함으로
(중략) 나의 알몸에 반응하지 않던 차들이 갑자기 경적을 울린다
좀 더 큰 소리로 그때! 라고 외쳐본다
그러자 차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끽끽— 멈춰 서며
당장 그 입을 닥치라는 듯 경적을 높인다
그제야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겨나는 기분으로
대곡 사거리 한복판에서 알몸으로
그때! 그때! 뻐꾸기처럼 노래 부른다
난 절대 잘못 떨어진 뻐꾸기 새끼가 아니다
여기는 나의 둥지, 너의 둥지, 우리의 둥지가 아닌가
그때! 그때! 내가 날뛰자 차들은 덜컹! 덜컹!
부딪치고 멈춰 서며 사거리는 조금씩 엉켜 든다
-황성희 '사거리 옛날 뻐꾸기' 부분
이 시의 화자는 '우리 모두의 둥지'였던 '대곡 사거리'에 '알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어떤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는데, 화자가 '그때'를 외치자 그제야 반응이 나타난다. 자기네들끼리 유유하던 차들이 경적을 울리다가 마침내 뒤엉킨다. '그때'는. 탁란의 뻐꾸기처럼 객으로 취급되었으나 끝내 주인이었던 시절에 대한 호명. 이는 관계의 파멸과 그에 따른 소외에 대한 폭로일 수도 있으며 타자화되었던 여성과 그 삶에 대한 처절한 항변일 수도 있다. 다만, 알몸을 향해 차들이 뒤엉켜 있는 저 끔찍한 풍경이 둥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가 어떤 모양이고 그것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언제고 시인은 역사의 복판에 알몸으로 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안과 고통과 헛된 열망으로 가득 찬 세계를 잠시나마 멈춰세울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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