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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메일] ‘팩트(fact)’와 ‘진실(truth)’

2025-12-22 18:00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배정순 〈전〉경북대학교 초빙교수

팩트는 곧 진실일까? 플라톤은 감각으로 확인되는 사실과 이성으로 도달하는 진리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대표 적인 것이 바로 동굴의 비유이다.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진짜라고 믿지만, 진실은 동굴 밖의 태양에 있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사실이고 태양은 이성, 곧 이데아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사실의 정확성과 진리의 적합성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사실은 개별 사건에 대한 기술, 즉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의미하며, 진리는 사물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인식, 즉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소피스트는 팩트와 언어를 설득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보았기에, 같은 사실로 정반대 주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도 사실의 나열보다 정의와 본질을 집요하게 질문하곤 했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조금 더 진실에 다가가고자 했다. 만약 사실이 곧 진실이라면 더 이상의 질문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질문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함이다.


사상가들은 팩트와 진실 사이의 오류를 인식하고 그 간극을 줄이고자 다양한 질문과 이성적 통찰을 갈구했다. 전 국민이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화시대, 대한민국에서 팩트는 매우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고 있다. 이 세상 어느 팩트에도 완벽한 진실을 담을 수는 없다. 팩트는 진실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팩트가 곧 진실이거나 전부인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으로 팩트는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어느 순간부터 팩트가 검증의 언어에서 권력의 언어로 바뀌었다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 또 누가 팩트를 선택하고 배열하는가의 문제가 있고, 팩트는 중립적인가, 아니면 이미 해석된 결과인가에 대한 관점도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대중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팩트가 사유를 멈추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는 관점은 우리를 더 많은 갈등과 거짓의 오류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팩트의 누락은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그림자가 될 수 있고, 팩트의 취사선택은 진실의 반대쪽을 가리키게 될 수도 있다. 팩트가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2000년 작 영화 '오! 수정'은 같은 사건을 두 남녀의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기억의 왜곡'을 다룬 작품이다. 사람은 주관대로 사실을 기억한다. 같은 시간의 사건이 두 사람에 의해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기억된다. 관객은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을 느낀다.


프로이트는 어떤 기억을 특별히 더 선명하게 떠올리는 것은 기억 뒤에 숨겨진 더 중요한 의미가 있거나 더 고통스러운 기억을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히 그가 치료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사후성의 원리'는 사실 자체보다 사실이 수정, 보완되었다 하더라도 현재 그가 느끼는 것을 더 중요하게 다루었다. 물론 현실 세계를 사후성의 원리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고통스러운 이유가 바로 팩트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영향이기에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이다. 팩트가 중요한 것은, 결국 그 팩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의미에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맥락을 거세하고 조각난 사실들로 상대를 공격하는 가짜뉴스들이 난무하고 있다. 아예 전부다 허위라면 우리는 속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묘하게 팩트가 선택되고 배열된다면 우리는 저항없이 팩트의 그림자에 갇히고 말 것이다. 맥락이 거세된 팩트가 진실일 거라는 믿음을 버리고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거세된 맥락을 잇고, 진실을 건져 올리는 질문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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